<연극>극단 완자무늬 "뜰앞에 잣나무"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41면

「연극가의 돈키호테」.
극단 완자무늬가 지난 14일 동숭스튜디오 씨어터에서 막을 올린 작품 『뜰앞에 잣나무』를 두고 부르는 말이다.이 극은 섹스물이 아니다.코미디도 없다.그렇다고 든든하게 뒷돈 대주는 사람이나 기업도 없으며 유명 연예인이 나오는 것도 아 니다.무거운주제도 어떻게든 가볍게 처리하되 진지함으로 포장된 웃음이 있어야 신세대 관객들이 몰린다는 요즘 대학로 공연의 「원칙」은 아예 무시했다.대신 80년대 최대 종교사건인 10.27법난을 배경으로 이 시대 종교와 권력이 인간과 인간,남과 여,상식과 비상식등의 실존문제를 인연과 응보의 틀속에서 어떻게 뒤틀리게 하는가를 묻는 진지한 접근이 있을 뿐이다.
『뜰앞에 잣나무』는 3백50여명의 스님이 잡혀갔고 그중 많은사람들이 육체와 정신의 깊은 상처를 안고 살아가거나 일부는 죽음을 맞은채 아직도 우리 현대사의 깊은 상흔으로 남아있는 80년 10.27법난을 당시 수좌승이던 원담스님이 희곡으로 옮겼고그것을 다시 연출자 김태수씨가 무대언어로 바꿔놓은 작품이다.
스님역을 맡은 5명의 배우가 지난 7일 합동 삭발.수계식을 가졌고 배우겸 기획을 맡은 조종원씨는 전국 각지의 사찰을 돌며1백일간 8만4천배를 올렸다.모두가 극중 스님들의 모습을 제대로 만들어내려는 노력들이다.
겹치기 출연에다 한달은커녕 보름,짧게는 1주일 연습이면 무대에 오르는 다른 공연과는 달리 6월초부터 전용연습실에서 땀을 흘렸다.무대 전체를 통일된 색감으로 만들고 장면전환의 암전을 최소화해 두시간 가까운 극의 리듬을 긴박하게 유지 할 수 있도록 한 것들은 모두 오랜 연습을 통해 시행착오를 극복한 결과다. 1년에 한편꼴도 못되는 과작 연출자 김태수씨는 이 작품을 「심우도(尋牛圖)연작시리즈」의 앞부분이라고 정의한다.심우도는 깨달음을 찾는 과정을 10단계로 나눠 그린 법화.소를 화두로 삼아 잃어버린 자아를 찾는 과정을 그린 작품을 잇따 라 무대에올릴 예정이란게 김씨의 설명이다.
그러나 「무대에서의 철학고리 찾기」로 이름붙인 이 연작시리즈의 후속작품은 어떤 것인가에 대해 김씨는 대답하지 않았다.이번공연이 실패하면 『작가 원담스님과 바다 건너 인도로라도 도망갈판』이라며 후속작의 구상은 끝났지만 실제 공연 여부는 이번 공연이 참패로 끝나지 않아야 비로소 가능할 것이기 때문이라는게 그가 밝힌 침묵의 이유다.
요즘 신세대 관객들의 취향을 무시한 채 「하고 싶은 말,남기고 싶은 얘기」를 한들 누가 들어줄 것이며 결국 흥행참패는 불보듯 뻔함에도 불구하고 대학로에서도 대관료가 비싼 편인 극장에서 그것도 한달을 넘게 공연하겠다는 이들의 무모함 은 「풍차를향해 돌진하는 돈키호테」의 그것과 너무 닮아있었다.문의.(02)381-1995.
이정재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