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걱정거리만 남긴 '분유파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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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식품의약품안전본부가 우유.분유등에 섞여있는 디옥틸프탈레이트(DOP)농도를 돌연 조사하게 된 직접적인 계기는 영국에서 지난5월말 발생한 분유파동이다.
영국.한국 이 두 나라는 모두 극심한 「DOP홍역」을 앓았지만 핵심쟁점은 크게 달랐다.
똑같은 프탈레이트류(DOP와 DBP가 여기 속한다)를 영국에선 「환경오염물질」로,한국에선 「발암가능물질」로 다뤘다.
영국에서는 유아용 분유에 함유된 프탈레이트류의 발암여부에 관한 논란은 전혀 없었다.파동이 한창 진행중이던 5월말 영국의 더 타임스지 관련기사에서도 암 또는 발암물질이란 단어를 찾아볼수 없다.식품위생관련단체나 학자들도 당시 DOP 가 발암가능물질이란 말은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보다는 프탈레이트류에 오염된 우유를 마시고 자란 남자아이의정자수 감소로 생식능력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점이 영국 분유파동의 시발점이자 영국 부모들의 걱정거리였다.암은 영국인에도무서운 병이며 학자들이 DOP가 2B그룹에 속 하는 발암가능물질이란 사실을 몰랐을 리 없다.
그런데도 영국에서 프탈레이트류의 발암성 여부가 논의되지 않은것은 그 물질이 인간에게 암을 일으킨다는 명확한 증거가 없고 발암보다는 생식독성을 일으킬 확률이 훨씬 높기 때문.또 정자수를 감소시킬 수 있는 물질은 프탈레이트 뿐만 아 니라 현재까지알려진 것만도 수백가지에 달한다.
결국 영국정부는 『불확실한 정보로 제조회사에 엄청난 타격을 줄 수 없다』는 이유로 회사명과 제품의 공개를 거부했다.
한국도 비슷한 상황이다.신문사에는 『하루 섭취허용치가 넘는 발암가능물질이 검출된 분유는 어떤 제품이냐』는등 부모들의 근심어린 문의전화가 빗발치고 있다.「불행히」언론도 이를 모르고 있다.우리 보건당국도 그 점을 일절 밝히지 않기 때 문이다.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특히 어릴 때 먹은 우유나 분유속에 든 프탈레이트류가 암을 일으킨다고 보기에는 어렵다.그보다는 아이들에게 분유.우유를 먹이지 않아 걸릴 수 있는 영양결핍이 더 큰 문제가 될지도 모른다.』 독자들이 독성(毒性)학자들을 많이 만날 수 있다면 분명 이같은 결론을 내릴 것이 틀림없을 것이다.
박태균 전문기자 사회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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