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감사이대론안된다>5.끝.로비에 흔들리는 의원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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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정부의 전부처와 크고 작은 기업들,법조계,각종 공사와 단체들,심지어 교육기관들까지 우리사회의 가장 중요한 단체와 기관들이일제히 로비열풍에 휩싸이는 때가 있다.1년에 한번씩.바로 국회의 국정감사때다.
국정감사가 시작되기 한달전께부터 실제 국정감사 기간 20일을포함해 약 50일간,대한민국의 로비란 로비는 총동원된다.의원들가운데는 『이 맛에 금배지 단다』고 하는 사람들이 적지않다.
국정감사에는 자료요구→대상기관및 증인의 선정→국정감사→사후보고서 작성등 몇가지 단계가 있다.로비는 이 모든 과정마다 치밀하게 파고든다.
먼저 자료요구.『자료요구는 내가 너희를 주목하고 있다는 사전예고입니다.대상기관은 잔뜩 긴장하게 되죠.로비의 출발은 이 때부터입니다.』여당의 3선 K의원의 말이다.
의원이 자료를 요구해오면 피감(被監)기관은 그때부터 기민하게반응한다.『단순한 엄포용인지,아니면 비리사실이라도 알고 있는지를 확인해야 적절한 대책을 세울수 있으니까요.』대기업 비서실에근무하는 A씨의 말이다.
그는 『단순히 인사치레를 요구하는 거라면 대충 넘어갈 수 있지만 의원이 비리의 냄새를 맡았다는 기미가 있으면 경영진까지 총동원된다』고 했다.
민간기업만 그런게 아니다.정부의 각 행정부처가 국감때 해당 상임위 소속 의원들을 국장급 간부들에게 「배분」한다는건 공공연한 비밀이다.
국장들이 책임지고 막아야 할 대상의원을 선정하는 것이다.이때학연과 지연은 물론 사돈의 팔촌까지의 혈연도 동원된다.
14대때 여당 의원보좌관을 했던 K씨는 의원들 스스로가 피감기관에 「로비 좀 하라」는 사인을 보내는 경우도 많다고 지적했다. 납품업체 선정기준을 따진 뒤 나중에 자신의 친.인척이나 후원자에게 납품권을 주라고 청탁하거나 건설회사를 물고 늘어진뒤아파트 내장 공사권을 대신 요구하는등 상상할수 있는 수법은 모두 동원된다는게 K씨의 말이다.
물론 금품이 오가는 구체적 로비사례는 그 자체가 범죄행위이므로 당사자들이 절대 입을 열지 않는다.하지만 나무가 흔들리는걸보면 바람이 분다는걸 알수 있듯이 국감을 전후해 의원들과 감사대상 기관들이 움직이는걸 보면 로비의 규모와 실 태를 대충 짐작할수 있다.
『국감이 시작되면 일단 회식이 많아집니다.보좌진들에 용돈도 듬뿍 집어주고.한마디로 의원들의 손이 커집니다.』여당의원 보좌관 C씨의 말이다.
한데 의원들만 그런게 아니다.정당도 마찬가지다.
야당의 재선의원 B씨는 『국감 때면 총재가 불러 지구당운영비에 쓰라며 2백만~3백만원씩을 집어주곤 한다』며 『국감때 이리저리 좌충우돌하며 피감기관을 괴롭힐 경우 그 횟수가 더 잦아진다』고 했다.
당지도부를 통한 로비는 피감기관측이 애용(?)하는 가장 확실하고 안전한 방법중 하나다.깐깐한 의원에게 로비를 잘못 하다간오히려 큰코 다칠 수가 있다.따라서 당의 고위층을 이용하면 로비 자금이야 더 들겠지만 뒤탈이 없기 때문이다.
13대때 야당이었던 이철용(李喆鎔)전의원은 『89년 경기도 국정감사때 도지사를 공격하자 총재의 측근인 K씨가 「지사가 내친구니 적당히 하라」는 메모 쪽지를 내려보냈다』며 『이런 경우가 비일비재하다』고 주장했다.
의원들 스스로가 로비이스트가 되는 경우도 많다.
『현장 국감을 갔다 돌아올 때 골프를 치거나 저녁 먹은 뒤 고스톱을 칠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이때 특정의원이 1백만~2백만원씩을 고스톱 비용이라며 나눠줍니다.자기돈일리는 만무하고 피감기관으로부터 로비를 받았다고 봐야겠죠.』야당 재선 P의원의 말이다. 그는 『오전 국감땐 누구를 불러라,어떤 자료를 내놓아라 하며 큰소리 치다가 오후엔 갑자기 입도 뻥긋하지 않는 의원들이 종종 있다』며 『이 경우 로비를 받았다고 보면 정확할 것』이라고 말했다.
국민회의 조순형(趙舜衡)의원은 『국감이 끝난 뒤 의원이 질의한 부분을 국감보고서로 작성하는데 국감 현장에선 강도높았던 질문들의 내용이 완화되거나 아예 빠지는 경우도 종종 있다』며 『이 부분도 로비와 관련이 있다고 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요즘도 국회의원들은 『누가 돈뭉치를 들고 와서 호통치고 돌려보냈다』는 말을 자주 한다.실제로 이달초 의원회관엔 모기업에서해당 상임위 의원들에게 과자상자를 돌리는 모습이 목격되기도 했다. 국회 임종훈(林鍾煇)법사위심의관은 『국감때가 되면 정부부처 관계자가 의원회관에 상주하다시피 한다』고 말했다.
여당 N의원의 보좌관은 『보좌관끼리 모이면 의원들이 챙기는 수법이 화제가 되기도 한다』고 말했다.우리 국회의 슬픈 자화상이다. 비리를 감시하려고 하는 국정감사가 오히려 각종 비리를 만들어내는 주요 통로가 되고 있다는 비난에 대해 정치인들은 이제 대답을 해야 한다.
김종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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