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이정의 거꾸로 미술관] 사진이 아닙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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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은 보기와는 달리 컬러 사진 출력물이 아니고 오리지널 회화랍니다. 다시 말해 손으로 직접 그린 거란 얘기죠. 실물과 대단히 흡사하게 묘사했죠? 사진의 급부상 이후 회화의 역할이 손상된 게 아니냐는 우려들이 많았습니다. 그리고 실제 큰 손상을 입은 것 또한 사실이고요. 그런 우려를 반영하듯 현대 회화는 자신의 생계(?)를 궁지에 몰아넣고 자리를 박탈한 사진 흉내를 냅니다. 사진처럼 그려버리는 거죠! 소위 하이퍼리얼리즘(Hyper-realism)이라 불리는 저항 운동은 사진과 회화의 역전관계를 만회하려는 주객전도의 한 시도 같습니다.

한편 작품의 제목 역시 '6개의 양철통'이나 '양철통이 있는 정물' 따위가 아니고, 그냥 단순하게 '점' 입니다. 점! 간단하죠? 그려진 대상(양철통)이 아니라 대상이 놓여진 '배경(점무늬 벽)'을 제목으로 택했습니다. 즉 대상들은 배경을 위해 존재하는 셈이지요. 여기서 두번째 주객전도가 발생합니다. 현대 회화는 이렇듯 주객전도를 왕왕 저지릅니다. 이것도 일종의 생존전략인 듯. 이런 주객전도 탓에 현대 미술이 난해하다는 오해를 받곤 합니다. 실은 별 거 없는데….

반이정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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