大選선심에 멍든 내년 예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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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대통령 선거의 해인 내년 예산안에 대한 당정협의 과정에서 신한국당은 긴축을 요구하는 한편 7천6백32억원에 이르는 추가예산 배정을 요구하고 나섰다.체중을 줄이라면서도 밥을 먹으라는 격이다. 정부와 신한국당은 9일 내년도 예산 규모를 올해 예산(62조9천6백26억원) 대비 14%를 넘지않는 범위에서 늘리기로 했다.이에 따라 내년 예산은 올 예산 증가율(14.8%)보다 1% 포인트 정도 낮은 13.8%이내(예산규모 71 조6천5백억원 정도)에서 결정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당정은 이날 아침 롯데호텔에서 이상득(李相得)정책위의장.심정구(沈晶求)예결위원장과 한승수(韓昇洙)부총리겸 재정경제원 장관등이 참석한 가운데 예결위 최종 당정회의를 열고 이같이 결정했다. 한마디로 이날 합의내용은 대선(大選)을 의식한 선심성 예산이라는 지적이 지배적이다.관변단체 지원중단,기금의 단계적 정리라는 원칙이 무너진채 신한국당의 요구가 대폭 수용됐다.
당정은 지방 재정의 어려움을 덜어주기 위해 현재 징수액의 80%만 지방양여금으로 넘어가는 주세에 대해 내년부터 1백% 전액(4천1백억원 추가 양여)을 넘겨주기로 결정했다.
특히 선심성 예산 지원으로 논란을 빚어온 새마을운동중앙협의회와 바르게살기 운동협의회.자유총연맹등 「관변단체」에 올해(40억원)의 3배에 이르는 1백10억원을 배정키로했다.
당정은 또 영농.영어(營漁).양축 자금으로 1천7백억원을 늘린 5천1백56억원을 배정하는 한편 낙동강 수질개선 비용으로 1천억원을 새로 배정하기로 했다.
재경원은 당의 무리한 요구의 대표 주자로 ▶새마을운동중앙협의회등 관변단체 지원▶영농자금 지원 확대▶노령수당 지급연령 하향조정▶저소득층의 인문계 고교 자녀에 대한 학비 지원▶여성발전기금 출연(1백억원)등을 꼽는다.
이른바 관변단체 지원 문제는 예산 편성 때마다 논란의 대상이었다.올예산에도 당초 정부는 「더 이상 지원하지 않겠다」고 밝혔다가 당시 민자당과 내무부의 요청으로 40억원을 배정했다.
그런데 이것이 내년 예산에는 1백10억원으로 3배 가까이 늘어났으며 해당 단체의 예산 배정 요구액 거의 전부를 반영해주기로 한 것이다.이에 대해 재경원은 일단 자금을 내무부에 배정했다가 구체적인 사업 내용에 따라 지원하는 것으로 제도를 바꿀 방침이라고 밝혔다.
영농자금의 경우 내년부터 쌀 수매제도가 바뀜에 따라 선도금이미리 지급되도록 돼있어 이를 영농자금으로 쓰면 된다는 재경원의논리다.재경원의 한 관계자는 『쌀 수매대금의 30~50%를 선도금으로 주면 6천억원 내지 1조원의 자금이 미리 나가는데 굳이 영농자금 명목으로 1천5백억원이나 추가 배정할 필요가 있느냐』고 지적했다.
양재찬.이정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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