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 없이는 한글 경쟁력도 없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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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호 34면

한글날이 다가온다. 늘 그랬듯이 한글의 과학적 우수성을 뽐내는 글들이 언론을 장식한다. 사실 한글의 과학성은 이미 공인된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한글이 다른 언어들에 비해 대단히 최근에 ‘창제’된 글자임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일본의 ‘가나(假名)’보다는 600년, 로마 글자보다는 무려 2000년 뒤에 등장했다. 구형 컴퓨터가 신형 컴퓨터를 못 당하듯이, 최신형 글자인 한글이 과학적으로 우수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문제는 ‘과학성’만으로는 한글 경쟁력의 필요충분조건이 성립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우리가 엄청난 비용과 노력을 기울여 영어를 배우는 이유는 수준 높은 지식과 폭넓은 정보에 접근하기 위해서다. 그렇다면 한글의 경쟁력을 끌어올리는 방법이 무엇인지도 자명해진다. 영어에 버금갈 정도로 한글 콘텐트를 풍부하게 만드는 일이다. 영어, 물론 배워야 한다. 그러나 우리가 ‘한국인’이라면 영어에 쏟는 노력의 1%만이라도 한글 콘텐트 확충에 바쳐야 한다.

시인 김수영은 1960년대 중반에 쓴 산문에서 1930년생을 기준으로 세대 구분을 하고 있다. 1930년 이전에 태어난 ‘구세대’는 해방되던 1945년에 15세 이상의 나이였고 따라서 일본어를 읽을 줄 아는 사람들이다. 1930년 이후에 태어난 ‘신세대’는 일본어를 못 읽는 사람들이다. 김수영은 구세대가 일본어를 통해 문학의 자양을 흡수한 데 비해, 신세대는 일본어 해독 능력의 결여로 인해 지적 수준이 현저하게 떨어진다고 지적한다.

김수영은 신세대 문학청년들을 뿌리 없이 자라난 사람들이라고 혹평한다. 일본어를 읽을 줄 모르는 까닭에 세계문학의 흐름으로부터 차단되어 있는 그들에게 가장 결핍되어 있는 것은 ‘지성’이라는 것이다(물론 김수영은 영어에도 능했다). 그는 ‘산더미같이 밀린 외국 고전들’을 우리말로 번역하는 것이야말로 문학의 범주를 뛰어넘어 ‘국운’에 관계되는 문제라고 지적한다. 그렇다면 김수영의 시대로부터 40여 년이 지난 지금은 형편이 나아졌을까?

일본은 메이지 유신 직후 정부 내에 ‘번역국’을 따로 두어 단기간에 조직적으로 수만 종의 서양 고전들을 번역했지만, 그들이 19세기에 번역한 고전들 가운데 아직도 우리말로 번역 안 된 책이 부지기수다. 대부분의 대학에서 번역을 연구실적으로 인정하지 않을뿐더러, 인문학자 상당수는 번역이 왜 필요한지에 대한 최소한의 인식마저 결여되어 있다. 번역이 힘든 건데 차라리 일본어를 배워 읽으면 되지 않으냐고 진지하게 말하는 인문학 교수를 본 적이 있다. 모국어에 대한 자긍심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한심한 모습이었다.

모든 국민에게 영어로 읽으라고 하는 것도 무책임하긴 마찬가지다. 지난 7월 28일부터 고려대 인촌기념관에서 거행된 제18차 세계언어학자대회는 소수민족 언어에 대한 언어학적 분석과 보존 계획 수립의 문제를 주요 의제로 삼고, 인간은 자신의 모국어를 사용할 때 가장 ‘창의적인 사고’를 할 수 있다고 선언했다. 21세기에 우리의 독창적 문화를 창조하는 일이 무가치하다고 판단하지 않는다면 번역을 통한 한글 콘텐트의 확충은 결코 미루어서는 안 될 시급한 과제다.

인문학 위기론이 팽배한 현시점에서 그나마 인문학 연구 인력이 가장 두텁게 층을 형성하고 있는 세대는 40대와 50대다. 그 아래는 학문 후속 세대의 단절이 우려될 정도로 ‘실용’에만 몰두하는 형국이다. 우리 인문학의 처지는 아기 울음소리 그친 농촌 현실과 크게 다르지 않다. 정부는 이들 연구 인력이 더 늙기 전에 대대적인 활용 계획을 수립해야 한다. 자칫 시기를 놓친다면 뒤늦게 사업을 추진하려 해도 마땅한 인력을 찾기 어려운 것 아닌가 하여 두려운 마음이다.

현재 정부의 번역 지원은 10년 전부터 학진(한국학술진흥재단)이 매년 펼치는 ‘명저번역지원사업’이 전부다. 올해 지원금은 지난해보다 늘어나서 19억원이다. 한글 콘텐트 확충에 투입되는 1년 예산이 ‘강남 아파트 한 채 값’이다. 이러고도 한글이 활짝 피어나길 기대한다면 위선이다. 최근 학진은 인문학 진흥은커녕 독창적인 사고를 펼쳐야 할 인문학자들을 옥죄는 기구로 변질되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차제에 학진의 인문학 부문을 분리시켜 ‘한국번역진흥재단’으로 개편하는 등 과감한 발상의 전환도 해봄 직하다. 우리의 ‘한글 사랑’이 정녕 립서비스에 불과하지 않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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