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자숙이 필요한 노 전 대통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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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노무현 전 대통령이 퇴임 7개월여 만에 서울에 올라와 여러 말을 쏟아냈다. 10·4 남북 정상회담 1주년 행사에서 현 정권의 대북·대미 정책과 대공 수사 등을 비난했다. 북한의 핵개발, 6·25 전쟁의 성격, 민중 역사관 등에 대해선 자신의 진보적 생각을 털어놨다. 앞서 그는 ‘민주주의 2.0’ 사이트를 만들어 ‘말 정치’를 시작했다.

전직 대통령은 5년간 국가의 운명을 조타(操舵)했던 국가 원로다. 전직 국가원수의 언행은 국가의 안녕과 발전을 도모하는 ‘여생의 봉사’여야 한다. 한국의 전직 대통령 문화는 그동안 연희동·상도동·동교동, 그리고 감옥에만 갇혀 있었다. 그래서 노 전 대통령이 고향에 내려가 환경·농촌개발·청소년 운동을 벌이겠다고 했을 때 우리는 새로운 문화를 기대했다.

국가에 대한 전직 대통령의 봉사는 선진국에선 일반적이다. 미국의 카터 전 대통령은 집 없는 이를 위한 목수가 되었고, 고어 전 부통령은 환경운동에 전념하고 있다. 프랑스의 드골은 낙향과 회고록으로 국민에게 애국의 메시지를 보냈다. 일반적인 경우도 이러한데 국정실패로 정권과 국회를 내어준 패장이라면 더욱더 자숙과 봉사에 몰두해야 할 것이다. 외환위기 한복판에서 정권을 내준 김영삼 전 대통령은 오랜 기간 아예 집 밖에 나가질 않았다. 노 전 대통령은 집권 내내 위헌적이고 경박한 언행으로 나라를 혼란스럽게 하더니 퇴임 후에도 시끄럽다. 그는 얼마 전엔 후원자의 요란한 골프장 결혼식에 주례를 서기도 했다.

전직 대통령도 정치적 의사를 표현할 수는 있다. 그러나 그 방법은 신중해야 하고 내용은 국가발전에 기여하는 방향이어야 한다. 헌법이 5년 단임제를 규정한 것은 집권 중에는 최선을 다하고 집권 후에는 자숙과 성찰 속에서 국가에 대한 봉사를 고민하라는 뜻이다. 노 전 대통령은 국가보안법 사범에 대한 사법처리를 비난했다. 이는 전직 대통령이 국가의 법 집행을 부정한 것이다. 6·25 전쟁의 성격 규정을 “악의적인 이념 공세”라니 그는 남과 북 어느 쪽의 국가원수였는가. 그는 주한미군과 한·미 훈련을 문제 삼으면서도 원초적으로 이를 초래한 북한의 대남 적대행위는 간과했다.

며칠 전 민주당에선 구 열린우리당 중심 세력이 민주연대라는 모임을 만들었다. 이들의 활동은 단순한 당내 노선투쟁을 넘어설 것 같다. 김근태 전 의장은 현 정권을 반민주적 독재정권으로 규정하면서 투쟁을 독려했다. 노 전 대통령이나 김근태씨 등 강경 진보세력은 국민의 마음을 잃어버린 국정실패 세력이다. 이명박 정권이 촛불에 흔들리자 과거의 세력이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국민 앞에 재등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