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망속에서 부른 절규의 노래 김현식 유작앨범 나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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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2면

생전에 김현식과 절친했던 동료 음악인들은 한결같이 그를 「광기와 열정의 가수」로 회고한다.오랜 무명의 늪을 헤치고 최고 인기가수로 성공했지만 여전히 채워지지 않는 그 무엇때문에 늘 방황했다.그는 또 완벽주의자였다.미완성 상태의 시범용(데먼스트레이션)테이프가 공개되는 것을 극도로 꺼렸고 홀로 차안에서만 들으면서 노래를 가다듬었다고 전해진다.
이같은 기질때문에 자신의 노래에 스스로 만족하지 못했고 현실에 적응하지도 못했던 그는 건강을 돌보지 않고 폭음했고 한때는대마초에 빠져들기도 했다.김현식이 여섯장의 음반에 남긴 노래들마다 하나같이 허무가 짙게 배어있는 것은 그런 생애와 무관치 않다. 그는 삶과 죽음의 갈림길에 서있던 병상에서도 노래를 불렀다.오늘부터 시중에 나온 그의 7집 『셀프 포트레이트』(자화상)는 그가 세상을 떠나기 수개월 전인 90년초의 어느날 서울의 한 병원 독실에서 카세트 테이프에 녹음한 노래중 일 부를 새롭게 가공한 것이다.
이번에 햇빛을 보게 된 김현식의 유작은 『사랑의 불씨』『이 바람 속에서』『다시 처음이라오』와 그가 즐겨부르던 비지스의 『퍼스트 오브 메이』,호세 펠리치아노의 『레인』등 모두 5곡.원래 통기타 반주만으로 녹음된 이 노래들은 송홍섭. 한상원.이호준.정원영등 선후배 음악인들이 반주를 입혀 완성됐다.지난 겨울발표된 비틀스의 신곡,즉 존 레넌의 노래에 나머지 멤버들이 코러스와 반주를 넣어 완성한 『새처럼 자유롭게』(Free as a Bird),『참사랑』(Real Love)과 같은 방식.물론기계조작으로 잡음을 제거하긴 했지만 음질에는 한계가 있다.
자작곡으로 추정되는 『사랑의 불씨』는 가장 김현식다운 곡이다.이미 죽음의 그림자가 길다랗게 드리운 시점이라 목소리가 몇군데서 갈라지지만,그래서 더욱 절절하고 슬픈 분위기를 자아낸다.
『다시 처음이라오』는 초창기 김현식과 음악생활을 같이 했던 이승희의 곡으로 80년대에 한 무명가수를 통해 발표됐던 곡.김현식은 이 노래를 자기 방식의 샤우트 창법으로 부르면서 짧은 삶을 독백처럼 그리고 있다.1절에서 녹음이 끊어진 이 노래는 그의 사촌동생이면서 가장 비슷한 색깔의 목소리를 지닌 김장훈이2절을 불러 완성했다.『퍼스트 오브 메이』도 미성의 소유자 박정운이 후반부를 덧붙였다.
한편 김현식의 미공개작 7곡이 아직 더 남아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후배 이모씨가 병상에서 녹음해 보관하고 있던 테이프에는김현식의 육성과 함께 노래 60여곡이 들어 있다.그의 히트곡과애창 팝송들이 대부분이지만 이번에 발표되지 않 은 신곡 7곡도함께 포함돼 있다.이번에 유작 5곡을 발표한 동아기획측은 『새로운 곡이 남아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돼 이번 음반에서 빠졌다』며 『지난주 판권 인수를 끝냈으며 곧바로 후속 음반을 제작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김현식은 언더그라운드 활동을 거쳐 80년대 초반 가요계에 데뷔,그룹 신촌블루스에서의 활동과 6장의 솔로 음반을 통해 『골목길』『사랑했어요』『비처럼 음악처럼』『내사랑 내곁에』등의 히트곡을 남겼으며 90년 11월1일 지병으로 짧은 생 애를 마쳤다.
예영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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