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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모두 '도시락'을 풀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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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생명은 비극조차 아름답다. 윤주영의 사진집 '그 아이들의 평화' (생각의 나무.2004년)에 비친 어린 생명들은 포탄에 날아간 팔다리며, 고엽제에 일그러진 몸통의 설움마저 잊은 채 구김없이 웃고 있다. 그래서 더 섧다. "캄보디아에는 지금도 600만개의 지뢰가 묻혀 있다. 이 지뢰는 전문가가 인위적으로 제거하거나 사람이 잘못 밟아 터지지 않는 한 영원히 살인 무기로 남게 된다." 잘못 밟는 것이 어디 캄보디아 어린이뿐이랴. 이 지구에서 지뢰 때문에 죽거나 다치는 사람이 한 시간에 3명이며, 그것을 없애는 데는 족히 1000년이 걸린단다.

*** 지뢰 대신 쌀을 심는 지혜

그 지뢰보다 무서운 것이 빈곤이다. 지뢰는 묻은 곳에서만 터지지만 빈곤은 심지 않아도 퍼지기 때문이다. 600만 봉지의 쌀 대신 600만개의 지뢰를 묻은 어른들의 횡포와 잔인에 목발 짚은 저 소년은 어떤 분노를 지피고 삭일 것인가. 그것이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의 특별한 얘기라면 글쎄 우리는 어떤가. 1만달러 소득을 내세우는 나라에서 20만 어린이가 밥을 굶고, 100만 아이들이 빈곤선 아래서 살아간다. 어른의 가난보다 아이의 가난이 심한 것은 수치지 자랑일 수 없다. 스웨덴과 우리의 소득 격차는 3대 1이 안 되지만 아동 복지 지출은 100대 1로 벌어진다.

본지의 탐사 기획 '가난에 갇힌 아이들'은 매회 가슴이 답답했다. 그 중에도 지하 월세방에서 혼자 혈당을 측정하고 인슐린 주사를 찌르는 17세 당뇨병 소녀가 역시 중병으로 친정에 몸져누운 어머니를 향해 "엄마 아파서 미안해. 하지만 나를 왜 이렇게 외롭게 만들었어"하는 대목에는 나도 모르게 눈시울이 화끈했다. 어두컴컴한 골방에 누워 골방 밖의 사회를 바라보는 그의 가슴에는 과연 무엇이 맺힐 것인가. 어른은 죄를 지어야 벌을 받는다. 그러면 이 아이들이 받는 벌은? 어른을 잘못 만난 죄밖에 달리 없을 터이다.

12세 우울증 소녀의 독백에도 마음이 스산했다. "부자가 아니라서 너무 싫어요. 공책도 아껴써야 하고, 반찬도 김치하고 계란밖에 없어요." 우리 어린 시절 계란은 생일이나 소풍 때나 맛보는 특별 부식이었다. 그 특별 메뉴가 부끄러울 만큼 나라의 생산력이 늘어났는데도 왜 부끄럽다는 생각은 점점 커지는가. 문제는 결국 소유의 많고 적음이 아니라 너와 나의 차별에 있음을 확인하게 된다. 이제 혼자 놓는 주사로 그들을 외롭게 하지 말고, 김치 반찬에 퍼렇게 멍든 마음을 풀어주도록 하자. 그것은 성장이냐 분배냐 따위의 거창한 토론 없이도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다.

성현 말씀에 명토 달아가며 대들 만큼 내가 막돼먹지는 않았다. 그런데도 마르코 복음에 나오는 기적, 빵 일곱개와 물고기 몇마리로 4000명을 먹이고도 일곱 바구니만큼 남았다는 내용에는 꼬부장한 마음이 없지 않았다. 그런 기술을 가지시고도 당신의 백성을 굶기는 것은 도무지 말이 안 되기 때문이다. 근자에 오인숙 성공회 수녀님의 묵상 수필을 통해 이 유감을 털어 내었다. 제자들이 군중을 향해 수중에 가진 것을 물었을 때 각기 "수천명이나 되는 사람들 앞에 내 것을 내놓아 보았자 터무니없이 모자라니 나만 굶게 된다"는 계산으로 제 도시락을 감추었다. 그러나 한 어린이가 아무 계산없이 보리빵 몇개를 바치자 예수께서 감사와 축복 기도를 드리셨다. 이에 부끄러워진 사람들은 너도 나도 자신의 음식을 꺼내 놓는다. 그러니까 애초에 없던 것을 나눈 것이 아니라 각자가 가진 것을 나눈 것이다. 그게 기적이었다!

*** "내가 나설 일 아니다"는 오해

우리는 아이들을 굶길 만큼 가난하지도 않고, 도시락을 숨길 만큼 인색하지도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뢰보다 더한 가난 속에 그들을 가둔 것은 내가 나설 일도 아니고, 나선다고 될 일도 아니라는 '오해' 때문이었다. 본지는 위 스타트-W(elfare) E(ducation) Start-운동을 펼쳐 그 오해를 풀기로 했다. 내가 꺼내고, 네가 꺼내고, 그래서 모두가 '도시락'을 꺼낸다면 우리도 기적을 만들 수 있다. 제대로 누릴 기회가 없고, 제대로 배울 자리가 없어 삶이 서럽던 아이들의 눈물을 그 기적으로 닦아주자. 이웃과 사회가 그렇게 차고 모질지만은 않으니 물오른 5월의 포플러처럼 쑥쑥 자라거라! 어린 우리 생명들아.

정운영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