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노총의 '짧은 계산'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0면

▶ 정철근 정책기획부 기자

"연기금을 주식시장에 퍼붓는 것은 군침을 흘리며 기다리는 고양이에게 생선을 안겨주는 것이나 다름없다."

정부가 연기금의 주식투자를 전면 허용하겠다고 밝히자 양대 노총이 4일 성명을 내고 강하게 반발했다. 외국인투자자들이 국내 주식시장을 장악해 투기성이 높아진 상황에서 연기금의 주식투자를 전면 허용할 경우 원금을 까먹을 우려가 있다는 주장이다.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은 정부가 이를 강행하면 총력투쟁에 나설 것이라고 엄포를 놓았다.

그러나 노조가 왜 이렇게 적극 반대하는지 대체 이해할 수 없다. 실상을 몰라도 한참 모른다는 지적도 나온다.

국내 최대의 연기금인 국민연금의 '투자 성적표'를 보자.

우선 국민연금이 도입된 1988년부터 지난해 말까지 가장 돈을 많이 번 종목이 주식이다. 이 기간 중 채권은 8.32%, 기타 8.19%인데 비해 주식은 12.73%의 수익률을 올렸다.

시장 침체기에 일시적인 평가손실을 기록한 적이 있지만 연기금은 장기투자를 하기 때문에 곧 수익률을 회복하곤 했다.

하지만 연기금 관련 부처와 감사원은 마치 원금을 다 까먹은 것처럼 난리를 쳤다. 양대 노총도 이런 근시안적인 평가에 주목했을 것으로 짐작한다.

오히려 연기금은 지금까지 채권 등 지나치게 안전자산 위주의 투자에 안주해 왔다. 과거처럼 금리가 높던 시절엔 이 같은 투자패턴이 통했지만 이젠 사정이 달라졌다. 국고채 금리는 4%대로 채권투자만으로는 물가상승률 이상의 수익률을 달성하기가 매우 어렵다. 따라서 연기금의 부실을 메우고 노조원 등 수익자들에게 보다 큰 혜택을 주기 위해선 주식은 물론 부동산.해외투자 등으로 투자를 더 다각화해야 한다.

우리나라 초우량기업의 주식은 절반 이상을 외국인들이 보유하고 있으며, 외국인 '큰손'중 연기금도 여럿 있다.

사정이 이런 데도 우리나라 연기금은 주식에 투자해선 안 된다는 주장은 시대착오적인 발상이다. 노총의 주장대로라면 자칫 노조원의 이익을 외면하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

정철근 정책기획부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