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칼럼>안전불감.무사안일 합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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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28일 오후8시15분,이웃 공사장의 무리한 터파기 공사로 경기도안양시안양6동 안양연립주택이 붕괴된데 이어 바로 옆 금산빌라 C동이 따라서 붕괴되기 불과 5분전.
안전지대로 대피하고 있던 주민 가운데 금산빌라 지하2호에 살고 있는 申헌우(40)씨가 기울어 가는 자신의 집으로 뛰어들어갔다. 주민들이 모두 말렸지만 申씨는 『꼭 찾아야 할 것이 있다』며 건물 속으로 뛰어들어간 것이다.
잠시후 申씨는 서류 한장을 손에 들고 맨발로 허겁지겁 빠져나왔다.그로부터 3분뒤 건물은 거짓말처럼 한 순간에 폭삭 주저앉았다.『귀금속은 물론 가재도구를 버리더라도 이것만은 반드시 찾아내야 했습니다.』申씨가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찾아 낸 서류는 뜻밖에도 지난 4월 안양시가 주민들에게 보낸 공문서 한장이었다. 공문서는 조영건설측이 연립주택과 불과 2~3떨어진 곳에서 조영리빙타워 신축공사를 시작한 지난 4월 주민들이 건물붕괴가능성을 지적하고 대책을 요구하는 탄원서를 낸데 대한 안양시의회신이었다 이 회신에는 『공사가 진행돼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내용이 담겨있었다.『세상에 이런 탁상행정이 있을 수 있습니까.수차례 붕괴위험을 호소했는데도 그때마다 안양시는 주민 요구를 외면했습니다.』 주민들은 『안양시가 정밀 안전진단을 실시하고 사전에 여유있게 대처했다면 가재도구라도 챙겼을 것 아니냐』며 주민들의 잇따른 진정에도 불구하고 뒷짐지고 있다가 붕괴 2시간전에야 긴급대피 명령을 내린 안양시의 안전불감증을 일제히 성토하 며 분노했다.
사고당일 오전9시에도 신고를 받고 시청직원이 나와 현장을 둘러봤으나 이 직원은 건물이 기울어진 것을 보고도 『붕괴위험은 없는 것같다』며 공사중지 조치는커녕 긴급대피 명령조차 내리지 않았다. 불안을 느낀 주민들이 공사현장 관계자들에 게 대책을 요구했으나 관계자들도『절대 안전하다』는 답변만 되풀이했다.
주민들이 대피한 것은 붕괴 2시간전.
터파기 공사를 위해 박았던 파일이 무너져내리는 것을 본 공사장 인부들이 긴급대피하라고 소리치는 것을 듣고서였다.주민들은 가재도구 하나 챙기지 못한채 입고 있던 옷차림으로 허겁지겁 빠져나와야 했 다.
이 사고는 정부가 성수대교.삼풍백화점 붕괴참사 이후 「안전제일」을 외치고 있지만 아직도 일부 건설회사와 감독관청의 안전불감증.무사안일 행정이 여전하다는 사실을 말해주는 어처구니없는 「원시적 붕괴사고」였다.삼풍백화점 사고와 다른 점 은 다행히 인명피해가 없었다는 것 뿐이었다.
엄태민 수도권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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