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인터뷰>20세기의 석학 종교.사회학자 하비 콕스교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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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종교의 현실 참여를 강조해 전세계에 커다란 반향을 불러일으킨『세속도시』(1965년)의 저자 하비 콕스(67)하버드대교수가지난 23일 한국을 처음 방문,25일 저녁 중앙일보와 단독인터뷰를 가졌다.
88년 뉴욕 타임스가 라인홀드 니버와 파울 틸리히 이후 20세기 최고의 종교.사회학자로 선정한 그의 방한은 『영성.음악.
여성』(95)의 한국어 출간(동연출판사刊)을 계기로 국제신학연구소(원장 이영훈)의 초청으로 이뤄졌다.<본지 8 월20일자 13면 참조> 콕스의 종교관은 종교의 상업주의와 세속적 권력에반대하면서 도시화.세속화로 야기된 소외 지역에서 억압받는 자들을 끌어안는 사랑과 평화의 공동체,민중속에서 인간의 영적 본질이 실현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천적 지식인인 그는 2차대전 후 유럽의 복구운동과 월남전 반대시위에 적극적으로 동참했으며 노태우(盧泰愚)정부가 서울올림픽에 그를 귀빈으로 초대했으나『군사독재정권의 초대에 응할 수 없다』며 거절한 바도 있다.
-『세속도시』를 통해 무엇을 비판하고자 했는가.
『세속화는 도시화.산업화를 뜻한다.이것이 분명 삶의 질을 향상해 인간해방에 기여한 것은 사실이다.그러나 「세속도시」를 쓸때나 지금이나 산업화는 재물을 신격화하는 상업주의,인간을 수단으로 삼는 권력남용,성의 상품화등을 불러들여 소 외된 자에 대한 사랑,신에 대한 외경과 같은 종교적 가치를 심각하게 위협하고 있다.이를 비판하고자 한 것이다.』 -종교는 영적 초월성을기본으로 하는데 어떻게 사회참여가 가능한가.
『인간은 본래 초월성에 근거하는 종교적 존재다.하지만 동시에실제적 삶은 역사와 사회를 벗어날 수 없다.그렇기 때문에 양자는 인간에게 상호 보완적이다.종교는 사회적 표현을,그리고 사회는 종교적 표현을 공유한다.신은 종교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삶의 현장에 있는 것이기 때문에 종교인은 사회정의에 관여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 주장이 종교의 권력화로 오용될 수도 있지 않은가.
『그렇다.오늘날 종교의 오용이 많다.종교가 현실참여를 해야 한다는 것이 종교의 세속화.물신화,신의 권력화를 의미하는 것은아니다.오히려 그것을 비판하는 것이다.이런 점에서 종교적 힘을상업적으로 이용하고 또 종교지도자의 카리스마적 권력을 만들어낸일부 종교에 대해 반대한다.』 -가난하고 소외받는 자,제3세계민중종교운동에서 새로운 종교의 르네상스를 찾는 이유가 그것 때문인가. 『종교의 본질은 희망이다.불의와 소외가 있는 세계에서보다 나은 세계를 희망하는 사람이 가난하고 고통받는 자들이라는점은 당연하다.단지 그 사람들에게 희망을 가질만한 합리적 근거가 필요한데 그것이 곧 종교다.예수도 마구간에서 태어 났으며,성경도 가난하고 소외받는 자에게 비전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한국교회에서는 개인복음이 우선이냐 사회복음이 우선이냐를 놓고 논란이 있다.
『기독교에서 신은 예수라는 구체적 인물의 삶으로 현장에 등장한다.그런 점에서 기독교는 현실을 매우 중시한다.성경 어디에도개인복음과 사회복음의 구분은 없다.인간은 사회적 존재고 나름의삶의 역사를 갖는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런 구분 은 현실적으로도무의미하다.이런 구분은 현대 종교이론가들의 고안물에 불과하다.
』 -교수께서는 오늘날 성령운동이 각 지역의 문화적 풍토에 맞게 새롭게 부활한다고 진단하면서 샤머니즘도 이런 원초적 영성으로 간주하고 있다.이에 대해 한국 신학자 일각에서는 비판의 목소리도 있다.
『물론 긍정적 측면만 있는 것은 아니지만 샤머니즘도 모든 사람이 지니고 있는 원초적 영성의 한 표현임에는 틀림없다.비단 아시아뿐 아니라 많은 지역에서 원초적 영성은 샤머니즘으로 표현되고 있다.따라서 샤머니즘을 그 지역의 민중문화로 이해해야 한다.기독교가 토착화하기 위해서는 이를 거부하기보다 이를 순화해연관성을 찾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그러나 서구 신학은 그 지역 보통사람들이 어떤 믿음을 가지고 있었는가에 관심을 갖지 않았다.그러나 구체적으로 한국의 샤머 니즘에 대해서는 잘 모르기때문에 판단을 유보하겠다.』 -한국에 세계 최대의 메머드급 교회들이 많다.이를 어떻게 평가하는가.
『한국교회의 성장은 하나의 미스터리다.하지만 한국 자본주의 발전과 일정한 관계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소비공동체의 팽창으로사랑과 기쁨등 종교적 가치가 파괴되고 빈부의 격차로 평화공동체가 붕괴되면서 이를 치유하고 새로운 공동체를 건 설하기 위한 대응의 결과로 보인다.이런 점에서 교회가 크다는 것이 꼭 나쁜것은 아니다.한국문화가 개인주의보다 공동체적 가치관에 기초하고있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양적 성장에 매달리는 것은 곤란하다.질적 성장도 그만큼 중요하다.더욱 중요한 것은 한국교회의 신학적 통찰력을 한국뿐 아니라 다른 나라 사회.문화발전에도 제시하는 것이다.』 -한국은 종교의 전시장과 같다.이것이 종교갈등 요인인가,아니면 종교적 다원주의가 실현될 수 있는 좋은 조건인가.
『물론 갈등의 요인이 될 수도 있다.하지만 종교다원주의 상황에서 기독교만이 존재하는 유럽과 달리 다양한 종교가 공존하는 한국적 상황에서 오늘날과 같은 기독교의 성장은 서구 기독교인에게 새로운 교훈과 패러다임을 제공해줄 수 있다는 점에서 중요한메시지가 있다고 본다.』 -21세기는 물질주의가 더욱 팽배할 것이다.그럼에도 정신주의가 다시 부활할 것이라고 조심스럽게 예견했는데,21세기 종교의 전망은.
『앞으로 가장 큰 문제는 물질적 대상에 신을 투영하는 우상숭배다.물질문명이 발전하면서 소외가 가속화하는 와중에 인간의 영적 가치를 상업화 체계에 투영해 평가하는 것이다.이는 거짓 정신주의다.
이는 영적 가치는 물론 진정한 물질적 가치도 파괴하는 결과가될 것이다.상업주의 사회가 절대 사랑.우정과 같은 정신적 가치를 만족시킬 수 없으며 오늘날 유럽처럼 영적 굶주림을 느끼게 될 것이다.물질주의나 상업주의는 외면적 필요를 충족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내적 필요의 만족은 이룰 수 없을 것이다.』 그는최근 한총련사태로 야기된 정치적 상황과 한국의 종교,그리고 문화에 대해 많은 관심을 보였다.
그는 지난 69년 히피문화를 소재로 쓴 『바보제(祭)』에서 풍자를 통해 새로운 사회를 지향하는 민중의 상상력에 주목했지만오늘날 X세대 문화는 「정체성과 메시지」가 없다며 통렬히 비판하기도 했다.
만난사람=김창호 학술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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