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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의눈>수재민 울리는 늑장행정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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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문산.연천.철원등 경기.강원지역에 수마가 할퀴고 간지 32일째-.처서가 지나면서 아침 저녁으로 스산한 바람이 부는데 집을잃은 철원군갈말읍정연리 74가구 3백여명의 주민들은 아직도 천막살이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는 소식이다.수재 민들은 썰렁한냉기가 감도는 천막 밑에 스티로폴을 깔고 누워 추위에 떨고 있다. 사정은 문산.연천도 마찬가지다.문산읍의 경우 50가구 1백32명의 이재민들이 문산초등학교 체육관에서 구호품으로 지급되는 쌀로 연명하고 있다.침수지역 농경지의 60%는 황토.자갈밭으로 변해버렸다.그러나 응급복구작업에 참여했던 군인. 공무원은썰물처럼 빠져나갔고 정부의 복구자금은 빠르면 추석이 지난 후에야 지급될 전망이어서 수재민들은 파손된 가옥등의 복구는 엄두를내지 못하고 속앓이 하고 있다.그래서 곳곳에서 수재민들의 시위.항의농성사태가 잇따르고 있다.연천군민 1천여명은 지난 22일전곡역 광장에서 궐기대회를 열고 『수해지역을 특별재해지역으로 선포해 적절한 보상대책을 마련할 것』을 촉구했다.수재민들이 수해지구를 삼풍백화점 붕괴사고 지역처럼 특별재해지역으로 지정해줄것을 요구하는 것은 자 연재해대책법상의 피해보상내용이 경작농지규모에 따라 차이가 심한데다 보상액도 그야말로 「쥐꼬리」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자연재해대책법은 피해면적이 30%이상인 가구중에서 경작규모가2㏊이하인 빈농인 경우 영농자금 상환연기,무상양곡 지급,자녀수업료 면제등의 혜택을 주고 있다.하지만 경작규모 2㏊이상이거나피해면적 30%미만인 가구는 지원 대상에서조차 제외되고 있다.
다만 주택이 파손됐을 때는 경작규모와 관계없이 지원하고 있지만최대 지원액은 1천8백만원에 그치고 있다.이중 순수한 국고지원액은 30% 뿐이다.나머지는 융자(40%)로 해결해야한다.
허리가 휘어지는 나라살림과 빈약한 정부재정을 감안할때,그리고홍수등 자연재해가 거의 해마다 되풀이되는 점을 고려할때 그때마다 정부에 충분한 피해보상을 요구하는 것은 무리가 아닐 수 없다.그러나 생활수준의 향상으로 해가 갈수록 피해 규모가 커지고물가는 치솟는데 보상기준은 예나 지금이나 대동소이하다면 그것은문제가 아닐 수 없다.자연재해대책법은 지난해 6월 제정됐다.하지만 보상내용에서 모법인 풍수해대책법(67년 제정)과 비교해 크게 달라진 것이 있다면 보상대상 을「피해면적 50%이상인 가구」에서 「30%이상인 가구」로 확대한 것뿐이다.그나마 쥐꼬리만한 지원금도 수해후 2~3개월이 지나서야 지급되기 일쑤다.정부와 여당은 물난리가 끝난지 한달만인 지난 24일에야 수해복구비로 모두 5천7백45 억원을 확정했다.이 가운데 3천8백80억원을 국고에서 지원하고 나머지는 지방비.은행융자.자부담.수재의연금등으로 해결한다는 것이 정부방침이다.
그러나 자치단체별로 복구계획을 확정하고 예산을 편성,의회의결등 절차를 거쳐 집행하기까지는 최소한 1개월이 필요하다.
정부는 복구비 가운데 3천8백억원은 국고지급을 약속했지만 현재 재경원이 확보하고 있는 재해대책예비비는 1천5백억원에 그치고 있다.부족액은 각부처 예비비로 충당한다는 계획이지만 각부처또한 예비비가 바닥났다고 아우성이어서 추경예산편 성이 불가피하다.추경예산을 편성하려면 9월 정기국회의 동의를 거쳐야한다.따라서 복구예산의 전액집행은 예상보다 훨씬 늦어질 수도 있다.
자연.인위적 재난은 예고없이 기습하는데 문민정부출범후에도 이같이 형식과 절차를 따지는 늑장행정은 버릇처럼 되풀이되고 있다.재난이 발생할 때마다 예비비가 바닥이 나 이곳저곳의 예산을 긁어모아 응급처방하는 구태도 여전하다.언제까지 수 재민의 현실과는 거리가 먼 이같은 고전적인(?)처방을 되풀이할 것인가.이부분에도 개혁의 칼을 대야할 시점이다.
(수도권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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