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포커스>'强者'의 추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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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일본의 경제4단체(經團連.경제동우회.상공회의소.日經連)는 매년 여름 기라성같은 재계의 거두들을 모아 「이 나라를 어디로 끌고갈 것인가」에 대해 세미나를 연다.이 세미나는 민간이 일본경제를 매년 중간점검하는 행사로 정평이 나있을 뿐 만 아니라 재계의 생각을 국민들에게 직접 전한다는 의미에서 매스컴의 주목을 받는다.
때문에 60,70대가 주축인 재계 지도급인사들은 회심의 경영철학이나 일본경제에 대한 전망과 분석,정부에 대한 건의등을 저마다 준비해 이 자리에서 격조있는 표현으로 발표한다.그런데 올해엔 세미나의 발언내용과 분위기가 예년과 사뭇 달 라 화제다.
경제4단체가 사전에 짜기라도 한듯 일제히 관료에 대해 포문을 열었기 때문이다.
『운수성 관료는 소학교 5년생이하의 수준이다.시장이나 경제의활성화를 위해선 관청은 없는 편이 낫다』(오구라 마사오 야마토운수 전회장),『민간은 혹독한 리스트럭처링을 하고 있는데 관료만 태평세월이니 우습지 않은가』(다테이시 노부오 오무론회장),『관료조직은 유기체(有機體)가 아니다.피가 통하지 않는다』(아라키 히로시 도쿄전력사장).
이밖에도 건설성 해체론,대장성 바보론,불치관료병의 유권자론,공기업의 총민영화론등 전엔 보복이 두려워서도 감히 꺼내지 못했던 거친 말들이 난무했다.메이지(明治)시대의 식산흥업(殖産興業)정책이래 산업발전을 주도해온데 대해 조금도 의심 받지 않고 있다고 자부해온 일본 관료들의 자존심이 크게 도전받는 장면이었다. 재계의 이같은 공개적 「표현」에 비판이 없는 것은 아니다.니혼게이자이(日本經濟)신문은 사설에서 장기적 시야에서 방향을잃고 헤매기는 재계 역시 마찬가지면서 무슨 패션처럼 관료때리기만 하느냐고 비꼬았다.그러나 행정.관료개혁을 요구하 는 대세는이미 관료에게 크게 불리한 쪽으로 기운 듯하다.
선거를 앞둔 정당들이 어떤 슬로건을 내거느냐를 보면 그 점을쉽게 알 수 있다.제1야당인 신진당의 오자와 이치로 당수는 최근 「내일의 내각」(섀도 캐비닛)을 개편하면서 자신을 총리겸 행정개혁담당 대신에 임명하고 행정개혁을 차기 총 선의 최대 쟁점으로 내걸겠다고 공언했다.자민당과 함께 연립여당을 구성하고 있는 사민당과 사키가케도 관료주도정치의 타파를 공약했고,자민당역시 이 문제를 초미의 과제로 다루고 있다.
에이즈 약해(藥害)문제를 놓고 부하 직업관료들을 적군(?)처럼 다루는 간 나오토 후생성대신이 인기절정에 있고,국민세금으로공무원끼리 먹고 마시는 관관(官官)접대에 국민들의 노여움이 끓어오르고 있는 것을 보면 관료에 대한 역풍의 정 도를 짐작할 수 있다.
이런 모습들을 대하고 있으면 문민정부 출범전후 한국의 군(軍)과 안기부가 사면초가로 얻어맞아 그로기상태에 빠진 과정이 연상된다.물론 한국처럼 정치지도자 한명에 의해 조직이 좌지우지되지 않고,막강한 규제권을 스스로 포기하지 않는한 일본 관료가 그렇게 쉽게 힘을 잃을 가능성은 희박하다.
그러나 아무리 강자(强者)라도 바깥세계의 변화를 얕잡아보거나부여된 권한을 과도하게 쓰면 어떤 형태로든 추락의 길을 걷지 않을 수 없다는 권력의 생리면에서는 닮은 점이 많다.민간부문의거대화.국제화에 보조를 못맞추고 조직방위 우선 의 제도피로에 안주한 것이 일본 관료의 추락을 자초한 가장 큰 원인이기 때문이다. 도쿄(東京)에 있으면 오가는 한국사람들을 더러 만나게 된다.주로 오피니언 리더에 속하는 이들은 외국에 왔다는 해방감때문인지 대체로 서울에서보다 솔직히 말하는 편이다.군과 안기부가 힘이 빠진후 이들이 자주 비판하는 한국의 새 강자 는 검찰과 언론이다.뭔가 분에 넘치는 힘을 쓰고,힘쓰는 방향이 잘못돼국민들 속에 미움의 싹이 자라고 있다는 지적이다.아프고 겁나는일이다. (일본총국장) 전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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