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만에 정적 찾아든 연세大 교정은 수라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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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시위 함성과 최루탄 총성,곳곳에 치솟던 불길이 사라진 연세대교정. 9일만에 되찾은 평온과 휴식이지만 폐허속의 잿더미와 가슴속 깊이 응어리진 절망밖에 찾아볼 수 없었다.
학생 4천여명이 닷새째 농성한 이과대 건물과 종합관 주변은 돌멩이와 타다만 바리케이드.최루탄 파편등이 어지럽게 널려 한차례 전쟁이 휩쓸고 지나간 격전지였다.
학생들이 점거했던 종합관은 연기에 검게 그을리고 깨진 유리창이 흉칙한 이빨을 드러낸 폐가로 변해 있었다.
건물 입구 로비는 커다란 동굴처럼 뚫린채 후끈한 열기와 매캐한 연기.최루탄 냄새가 뒤엉켜 호흡이 어려운 지경이었다.학생들이 생활했던 3층은 말그대로 수라장이었다.책걸상을 모두 들어낸강의실 한편에는 내의.학생수첩.책가방이 널려 있 었고 『여긴 너무 무서워 견딜 수 없어요』라고 쓴 한 여학생의 일기장도 겉장이 찢긴채 나뒹굴고 있었다.
끝없이 흘러내리는 구정물을 따라 4,5층으로 올라갔으나 상황은 똑같았다.모든 책걸상은 학생들이 바리케이드로 사용하느라 밖으로 들려나가고 없어 강의실은 휑하니 비어 있었다.다만 학생들이 깬듯한 유리조각과 감자만한 돌멩이가 바닥에 어 지럽게 깔려있어 이곳에서 어떻게 며칠씩 지냈는지 신기할 지경이었다.
5층 강의실 흑판에는 「절대 잠들지 않는다.절대 물먹지 않는다.자라고 할때 자고 먹으라고 할때 먹는다」는 대전총련 학생들의 「건강수칙」이 적혀 당시 절박했던 상황을 보여주었다.
학생들이 대피했던 마지막 비상구였던 6층 동편 계단을 따라 올라간 옥상에는 1천5백여명의 학생들과 경찰로 발디딜 틈조차 없었다.며칠 계속해서 헬기가 형광액 섞인 최루액을 뿜어댔기 때문인듯 옥상 바닥은 피를 토해놓은 것처럼 붉게 물 들어 보기에도 섬뜩했다.
화공약품등 위험물질이 곳곳에 위치해 경찰의 건물진입시 대형 참사가 우려됐던 이과대 건물은 학생들이 미리 달아났기 때문인지종합관보다 훨씬 깨끗했다.
학생들이 써붙인듯 실험실과 교수연구실에는 「절대 문열지 말 것」이라는 경고문이 붙어있었다.
종합관과는 달리 붙박이 책걸상이 많은 탓에 학생들이 복도에서머무른듯 복도에는 펴놓은 신문지와 과자부스러기.더럽혀진 옷가지가 곳곳에 널려 있었다.그러나 이과대 건물 주변은 역시 전쟁터의 모습이었다.불이 붙은 바리케이드 서너군데에서 는 오후 내내검은 연기가 피어올랐고 돌멩이와 최루탄 파편이 밟혀 걷기조차 쉽지 않았다.
김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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