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식량難은 북한과 관계개선 好機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북한이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집중호우 피해를 보았다.
강원도와 황해남북도.평안북도 신의주 일대에 상당한 비가 내렸고,앞으로의 기상도 예측불허 상태여서 비피해는 더 확대될지도 모른다.2년 잇따라 수해가 발생한 피해지역이 상상 이상으로 큰타격을 보았을 가능성도 있다.
북한당국은 지난해와 달리 피해상황을 일찌감치 대외적으로 밝혔다.그만큼 다급해진 것이다.피해총액은 17억달러,곡물 손실은 1백만이라는 발표다.그러나 곡물저장.생산에 상당한 타격을 보았어도 가을수확기가 가깝다.때문에 본격적인 식량위기 는 내년 춘궁기에 닥칠 것이다.서방측 일각에서는 식량위기에 따른 북한 정권.체제의 붕괴를 우려하는 소리가 나오고 있다.그러나 금년의 곡물총생산이 4백만 전후라고 한다면 그것만으로도 약 8개월의 여유가 생긴다.또 최악의 경우 북한에서 예상되는 사태는 「기아에 의한 집단난민」의 발생이 아닌 「관리된 기아」일 것이다.
아프리카의 예에서 보더라도 식량위기가 정권.체제를 붕괴시키지는 않는다.식량을 구하러 집단적인 인구이동이 발생하면 그것이 약탈.폭동.반란등 원인이 되 고 결국 정권.체제가 무너진다.요컨대 집단난민의 발생이 정권의 관리능력을 빼앗는 것이다.그러나북한의 경우 두가지 이유에서 집단난민은 발생하지 않을 것이다.
첫째,집중호우라는 재해의 성질상 피해지역이 지리적으로 고립돼있다.둘째,압도적인 공권력에 의해 주민이동이 엄격히 제한돼 있다.때문에 기아에 직면하면 「관리된 기아」를 받아들이거나 개인적으로 도망치는 방법밖에 없다.물론 외부세계는 그같은 비인도적상태를 좌시하지 않고 식량원조를 단행할 것이다.
북한이 외부로부터 식량과 에너지를 제공받으면 국민만 그것에 의해 구제받는 것은 아니다.정권 또한 구제되는 것이다.
역으로 식량.에너지가 차단되면 비인도적 상태가 도리어 심각해진다.여기에 「원조의 딜레마」가 있다.
그렇다고 해서 북한지도부에 식량위기가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은 아니다.
김정일(金正日)비서의 국가주석및 노동당총비서의 공식취임이 지체되고 있는 것은 식량위기가 주된 원인일 것이다.「3년상」을 주장해온 이상 수해피해가 심각하다 해서 내년 7월 이후까지 공식취임을 늦출 수는 없다.
북한지도부는 가뭄.우박을 포함한 4년 연속의 악천후 때문에 농업생산에 자신감을 잃고 있다.농업제일주의가 성과를 거두지 못하면 남아있는 길은 경공업제품의 위탁생산에 의한 외화획득이다.
그것이 이뤄지면 자력으로 식량을 수입할 수 있기 때문이다.
북한은 내년 춘궁기까지 다시 한국.일본으로부터 식량원조를 얻어내야 한다.한.일 양국이 지난해 65만의 대규모 쌀지원을 했지만 이번의 경우 이를 국제적인 인도상 원조로 조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따라서 지난해에 이은 집중호우는 북한 주민에게는 식량위기를 초래했지만 우리에게는 북한과의 관계를 타개할 외교적 기회를 가져다주고 있다.
북한지도부는 식량위기를 완화하기 위해 경제개방을 가속화해야 하고 한.일 양국과의 관계를 어느 정도까지는 개선해야 할 것이다. 그런 관점에서 필자는 현재 한.미 양국간에 진전중인 4자회담에 관한 「3자 설명회」관련 협의를 주목한다.물론 북한측이추구하는 것은 북.미 2국간 평화협정이지 4자회담은 아니다.
또 「3자설명회」가 3자회담이나 변칙 3자회담(남북회담과 북.미회담의 병행 개최)으로 발전하기까지 어느정도 시간이 걸릴 것이다. 그러나 일단 「3자 설명회」가 열리고 되풀이된다면 그것은 남북대화의 부활로 해석돼도 좋다.그렇게 되면 북한.일본의국교정상화 교섭도 재개되고 한.일 양국의 쌀 추가지원도 가능해진다.지나친 기대는 금물이지만 한.미.일의 긴밀한 협의 와 전술조정이 잘 이뤄지면 북한의 개방.개혁으로 향한 확실한 일보가모색될 수 있을 것이다.
오코노기 마사오 일본 게이오大 교수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