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책읽기Review] 보살핌은 ‘착한 본능’사회를 묶는 따뜻한 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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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애정 어린 보살핌을 받은 아이는 스트레스 조절 시스템이 잘 발달한다. 질병의 예방 효과가 있는 것이다. [중앙포토]

보살핌
셀리 테일러 지음, 임지원 옮김
사이언스 북스, 448쪽, 1만8000원

 ‘보살핌’의 가치는 어느 정도일까. 미국 캘리포니아주립대 로스앤젤레스 캠퍼스(UCLA) 심리학과 교수인 저자는 신경생리학과 뇌과학·발달심리학·진화생물학 등 다양한 분야의 연구 결과들을 취합해 “보살핌은 인간의 본성이며 사회를 하나로 묶어주는 힘”이란 결론을 끄집어냈다. 다른 사람을 보살펴주고 싶고, 또 보살핌을 받고 싶은 본능이 친구를 사귀고 가정을 꾸리게 하는 원동력이란 것이다.

보살핌의 뿌리는 깊다. 인류가 처음 탄생할 무렵부터 보살핌은 존재했다. 뼈의 화석이 과학적 근거가 된다. 화석에는 타고난 결함을 갖고 있거나 끔찍한 상처를 입은 사람들이 당시 기준으로 오래 살았던 흔적이 있었다. 누군가가 그에게 음식과 물을 가져다 주고 불을 지펴 주고 맹수들을 쫓아 주며 돌봐 주었다는 증거다.

보살피고 싶어하는 인간의 본능에는 생물학적 프로그램이 자리 잡고 있다. 바로 옥시토신과 바소프레신·내인성 아편계 펩티드(endogenous opioid peptide)·성장호르몬 등에 의해서다. 에스트로겐·테스토스테론 등 성호르몬의 영향도 큰 만큼 ‘보살핌’의 강도에는 성차(性差)가 있다. ‘보살핌’이란 본능은 남성보다 여성에게서 더 뚜렷하게 나타난다.

보살핌의 잠재력을 보여주는 실험 결과도 많다. 따뜻한 보살핌은 아이들의 성장을 촉진시키고, 말기 암 환자들의 수명을 늘리며, 면역력을 높였다. 또 우울증이나 불안장애 같은 각종 정신적 질병뿐 아니라 심장병·당뇨병 등의 신체적인 질병도 보다 쉽게, 보다 빨리 치유했다.

심지어 유전자 발현에도 영향을 준다. 신경과학자 브라이언 샌더스와 매슈 그레이의 실험이 그 주장을 뒷받침했다. 고혈압에 걸리기 쉬운 유전자를 가진 새끼 쥐를 이용한 실험이었다. 고혈압에 잘 걸리는 경향을 가진 어미 쥐에게서 자란 쥐들은 스트레스를 받았을 때 강렬한 혈압 상승 반응을 보인 데 반해 보통의 어미 쥐에게서 자라난 쥐들을 그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고혈압 경향을 가진 어미 쥐들의 ‘고혈압적 양육방식(초조하고 신경질적인 태도 등)’을 피한 새끼 쥐들에게선 유전적 위험 요소가 발현되지 않았던 것이다.

이렇게 ‘운명’을 바꿔놓는 보살핌의 실체가 제대로 조명받지 못 해온 데는 이기심만을 인간의 주요 동기로 해석하는 ‘집단 최면’ 의 영향이 크다. 매사를 두고 ‘인간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행동한다’는 기본 가정을 세우면서 이기적이지 않은 모든 행동에는 의심의 눈길을 보내게 됐다. 이를 테면 사람들이 자선 기관에 기부하는 것은 세제 혜택을 받기 위해서고, 어머니가 아이를 돌보는 것은 자신의 유전자가 보존되기를 원해서이며, 봉사활동에 시간을 투자하는 것은 자신에 대해 좋은 느낌을 가지 위해서라는 식이다.

보살핌이 우리 본성의 일부라는 사실을 도외시하면서 보살핌의 잠재력을 이끌어낼 기회도 함께 잃었다. 이기심만 인간의 속성으로 이해한 결과, 보살핌 속의 ‘이기적이지 않은 성향’이 ‘비정상’, 심지어 ‘열등’의 범주에 들어가기도 했다. 저자가 이 책의 내용을 미리 논문으로 발표했을 때 가장 처음 나타난 반응이 페미니스트 학자들의 항의였다고 한다. 여성에게 보살핌이란 본능이 더 강하다고 주장한 데 대한 반기였다. 여성을 무임금 보살핌 노동에 내몰아온 역사에 대한 거부감이 보살핌의 가치에 대한 거부감으로 표출된 셈이다.

하지만 인간에게 보살핌은 섣불리 폄훼할 수 없는 소중한 자산이다. 보살핌이야말로 사회적 유대의 약화로 발생하는 현대 사회의 각종 질병을 예방하고 치유할 특효약이 아닌가. 보살핌 본성의 사회적 활용 방안을 찾는 데 더 서둘러야 할 터다. 원제 『The Tending Instinct:How Nurturing is Essential to Who We Are and How We Live』.

이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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