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아닌 길거리뮤지컬 "스톰프" 美 브로드웨이 강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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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제멋대로인 것같은 춤,대사도 노래도 없는 뮤지컬아닌 뮤지컬 한편이 뮤지컬의 본산 브로드웨이 무대를 강타하고 있다.
『스톰프(Stomp)』.거리의 젊은이들이 만든 오프 브로드웨이의 이 뮤지컬은 94년 뉴욕 오르펨극장에서 개막된 이래 연일만원사례를 기록하며 전미 순회공연에 나서는등 폭발적인 인기를 얻고 있다.
8개의 나무빗자루,8개의 지포라이터,20파운드의 모래,5장의일요일자 뉴욕타임스지,4개의 자동차 휠캡,10개의 양철쓰레기통,그리고 성냥갑.비닐봉지등 잡다한 일용품들.
뮤지컬 『스톰프』에 등장하는 악기(?)들이다.제작비 수십억원에 초호화 오케스트라,수억.수십억원을 투입해 만들어낸 무대장치를 자랑하는 빅뮤지컬들이 즐비한 브로드웨이에서 이런 「쓰레기」들로 만든 이 뮤지컬이 히트한 것은 이곳에서도 일 종의 반란으로 불린다.
「발을 세게 구르는 재즈풍의 춤」을 뜻하는 『스톰프』는 실험적이고 전위적인 뮤지컬.5년전 영국의 젊은이들에 의해 만들어진이 작품은 원래 길거리에서 행인들을 모아놓고 벌이던 신세대의 퍼포먼스에서 출발했다.비싼 악기나 제대로 된 무 대등이 전혀 필요없게 된 것도 시작이 이처럼 거리무대였기 때문이다.
일반적인 뮤지컬이 춤과 노래와 연기의 조합인데 비해 『스톰프』는 아크로바트와 연기.리듬의 조합이다.노래는 없지만 음악은 있고,가수는 없지만 리듬은 있으며,대사는 없지만 연기는 있다.
리듬은 폭발적이며 생동감 넘치고 춤은 감탄을,연기 는 폭소를 자아낸다.흥과 열정과 상큼함이 넘친다.
막이 오르면 페인트 묻은 허름한 차림의 한 젊은이가 나무빗자루 하나를 들고 나타난다.길거리 어디에서나 만날수 있는 그런 인물이다.반팔 티셔츠의 이 젊은이는 빗자루로 바닥을 쓸기 시작한다.단순히 쓸고 닦고 문지르던 동작은 곧 빗자루 를 든 3명의 동료들이 등장해 같이 쓸고 닦으면서 기묘한 리듬을 만들어 낸다.『쓱쓱,쓱쓱쓱,쓱쓱,쓱쓱쓱-.』나무마룻바닥을 두드리고 쓸면서 만들어내는 이 리듬은 단조롭지만 독특하고,간단하지만 매혹적이다.곧 무대는 8명의 젊은이로 채워진다 .흑인.백인.라틴계,남과 여가 골고루 섞여있다.젊음의 리듬은 국경과 인종을 초월한다는 메시지를 담은 캐스팅이다.빗자루 리듬을 탄 뒤집고 쓰러지고 구르는 젊은이들의 동작은 점차 격렬해지고 박자는 급속히 빨라진다.무대는 이들이 만들어내 는 환상적인 리듬과 동작으로 터질 듯하다.갑자기 정적.모두 퇴장한 무대에 다시 성냥갑을 든청년 1명이 등장한다.이어 8명이 모두 성냥갑을 가지고 등장하고 알이 든 성냥갑은 곧 악기가 된다.『착,착,착착착-.』경쾌한 성냥갑 연주가 끝나 면 다음은 신체가 악기가 된다.손뼉에서부터 가슴과 허벅지를 두드리는 소리가 훌륭한 연주가 된다.모래.양철쓰레기통.싱크대.고무봉.비닐봉지.신문지까지 등장하는 온갖잡화는 모두 훌륭한 악기로 사용된다.「만물은 소리를 낸다.고로만물은 악기다」란 『스톰프』의 이념이 그대로 드러나는 장면이다. 록과 재즈,레게와 아프리카-라틴 비트,바흐와 뉴에이지가 구분없이 섞여 리듬을 만들고 어우러진다.경쾌한 탭은 육중한 울림이 되고 기존의 리듬은 모조리 해체,재결합한다.거리의 젊은이들이 외치는 산업사회의 질서와 리듬에 대한 거부의 음 성이자 「시대를 울리는 음성」이다.
91년 에든버러 페스티벌에서 거리공연에 연극적 기법을 가미해첫선을 보인 이 뮤지컬은 일절 대사없이 푸른색 보디페인팅을 한연기자들에 의해 인기리에 공연중인 블루맨 그룹의 『튜브』와 함께 차세대 브로드웨이의 대표주자로 불린다.파격 적인 아이디어,언어의 틀을 벗어던진 자유로움,폭소를 자아내는 극 구성.자본과규모만이 세계적인 뮤지컬의 전부가 아님을 증명해낸 『스톰프』는그래서 한국 뮤지컬의 세계화에도 하나의 방향을 제시한다.
뉴욕=이정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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