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바루기] ‘처녀’ 출전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경제 06면

“처녀 출전한 월드컵 본선에서 그는 매우 훌륭한 경기를 펼쳤다.” “삼성생명과 격돌… ‘처녀 우승’ 자신” “일반적으로 시인의 시적 전개 과정에서 처녀작은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지난 1일 오전 부산에 미국 크루즈선 7만7000t급 ‘선 프린세스’호가 처녀 입항해 오후까지 반나절 머물렀다.”

‘처녀’는 결혼하지 않은 성년 여자를 의미한다. 아무도 손을 대지 않았다는 점에서 깨끗하고 처음이라는 뜻이 생겨났다. 여성만의 순결을 강조하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처녀’라는 표현은 예문처럼 여러 상황에 사용돼 왔다.

사람에 의해 한 번도 이용·벌채된 적이 없는 천연 상태의 산림을 ‘처녀림·원시림’이라고 한다. 원시림·처녀림에 해당하는 영어가 ‘virgin forest’, 의회에서 처음 하는 연설이 ‘처녀 연설’(maiden speech), 비행사가 처음으로 하는 비행이 ‘처녀비행’(maiden flight)임을 보면 동서양이 마찬가지인 모양이다.

‘처음, 첫, 최초’라는 뜻으로 굳이 ‘처녀-’를 써야 할까. 여성의 성적·신체적인 면을 이용한 이런 표현에는 남성 중심 사상이 자리 잡고 있다.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처음, 첫’으로 표현해도 의미를 전달하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 

최성우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