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관론자도 미국 증시 낙관론 합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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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6면

반등의 시기를 알려면 투자의 달인을 살펴라-.

미국 금융위기가 길어지자 현지의 거물 ‘족집게’들이 주목받고 있다. 시장의 큰 흐름이 바뀔 때 통계지표보다는 대가의 직관이 더 힘을 발휘한 적이 많아서다. 그간 미국 경제와 금융시장에 대해 비관론을 펴던 전문가 중 상당수는 최근 낙관론에 한 발을 담그고 있다. 미 정부의 구제금융안 발표가 직접적인 계기다. 은행지주회사로 변신을 선언한 골드먼삭스에 50억 달러를 투자한 워런 버핏 버크셔 해서웨이 회장이 그렇다. 대표적 비관론자인 마크 파버(펀드매니저)와 누리엘 루비니(뉴욕대 교수)도 대열에 합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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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뢰 살아날까=버핏은 “지금 투자하지 않는 건 노년을 위해 성욕을 아끼는 꼴”이라고 말했다. 24일(현지시간) CNBC 방송과의 전화 인터뷰에서다. 그는 AIG 지분 인수에도 관심이 있다고 밝혔다. 이번 구제금융이 “궁지에서 벗어나기 위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며 “미 정부는 장기적으로 들인 돈을 뽑고도 남을 것”이란 말도 했다. 이어 “10년 안에 지금이 (주식을 살) 기회였다는 걸 알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대표적 가치투자자로 꼽히는 그는 얼마 전까지도 금융주는 거들떠보지 않았다. 지난해 말 “월가 투자은행들이 지분 매입을 요청했지만 거절했다”고 공개적으로 밝히기도 했다. 월가 전문가들은 이런 그가 골드먼삭스에 돈을 댄 것은 미국 금융위기가 최악의 터널은 벗어나고 있다는 뜻이라고 해석했다.

뉴욕 증시가 공황에 빠졌던 1987년 ‘검은 월요일(블랙 먼데이)’을 맞혀 유명해진 비관론자 마크 파버도 자세를 고쳐잡는 중이다. 15일 블룸버그TV와의 인터뷰에서 “다음달 중순부터 내년 봄까지 증시가 상당한 정도로 반등할 것”이라고 했다.

25일 홍콩에선 기자들과 만나 “미국 금융을 살리는 데 7000억 달러를 가지곤 안 된다”면서도 “주가가 워낙 빠져 스탠더스 앤드 푸어스(S&P) 500지수가 1350선(14% 상승)까지 오를 것”이라고 주장했다. 2006년부터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로 인한 미국 금융위기를 주장한 누리엘 루비니 뉴욕대 교수도 마찬가지다. 뉴욕 타임스 기자에게 “경제 침체로 가는 열차가 출발한 건 맞지만 이제 5년이 아니라 18개월이면 역에 도착할 것”이라고 말했다.

◆남의 말은 참고만=굿모닝신한증권 이선엽 연구위원은 “미국 금융이 공황으로 치닫는 상황은 피했기 때문에 안도감이 생겨 어느 정도 상승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그는 “마크 파버가 말한 S&P500지수 1350선을 코스피에 대입해 보면 1690에 해당한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월가 거물의 말을 너무 믿는 건 위험하다는 견해도 있다.

한국투자증권 김학균 수석연구원은 “거액을 투자한 월가 큰손들은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전망을 내놓는 경우가 있다”고 말했다. 주가 급등을 노려 단타매매에 나서는 것도 피해야 한다. 워런 버핏도 CNBC 인터뷰에서 “한 달 뒤나, 반년 뒤에 주가가 어떻게 될지는 나도 모른다”며 장기투자를 강조했다. 

김선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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