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안교육의현장>3.전남靈光 영산성지학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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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고교 2학년때 폭력서클에 가담했다가 제적당하게 되자 전학할 학교를 찾아 무려 30여군데나 전전했지만 번번이 거부당했던 C군.성적이 나쁘다고 영어교사에게 걸핏하면 매맞는게 지겨워 학교에 가지 않고 거리를 헤매다 가출한 뒤 제적당한■ K군.이들은모두 영산성지학교(전남영광군백수읍길룡리77)에 와서야 『가족같이 편안한 분위기 덕분에 비로소 안정을 찾았다』고 털어놓는다.
영산성지학교(교장 유원희)는 일반학교에서 퇴학당하고,부모한테서도 버림받다시피한 청소년들에게 다시 교육받을 수 있는 기회를주는 대안학교.
82년 농촌 청소년들을 위한 고등공민학교로 출발,85년 각종학교로 인가받아 문제학생들이 거듭나게 하는 교육을 실천해 왔다.현재 11명의 교사가 학생 57명을 가르치는 「초미니」학교.
학생들은 모두 기숙사에서 생활하는데 요즘 여름방학 에도 원하는학생은 언제든지 학교로 찾아와 며칠씩 지내고 간다.이 학교는 「꼴찌도 주인」이라고 강조,학생들을 저마다 소중한 인격체로 존중하며 학교생활의 주인이 되도록 철저하게 인성교육에 힘쓴다.「남에게 피해를 주지 말자」는 것과 「 아침 식사만은 모두 함께하자」는 두가지 외에는 학교가 정한 규율이 없다.대신 학교활동.행동기준.식당메뉴에 이르기까지 모든 규율은 교사와 학생들이 동등한 목소리로 참여하는 전체회의에서 자율적으로 정한다.
『저희가 잘못했습니다.앞으로는 그러지 않겠습니다.』 얼마전 마을에서 담배피우며 거니는 학생을 목격하고 항의한 마을 이장을모시고 3시간여 걸친 전체회의에서 학생들은 주민들에게 사죄하고앞으로 자제하기로 약속했다.일방적 지시나 통제에 시달린 학생들이 스스로 규율을 만들고 통제력을 기 르며 결과를 판단할 수 있는 주체의식을 경험토록 하기 위해 이런 회의를 운영한다.
지식교육을 최소화하고 대신 다양한 특별활동과 봉사활동등 공동행사를 많이 하도록 하는 것이 이 학교 교육방식의 가장 큰 특징.학과수업에서는 개인차를 인정하는 능력별 학습을 함으로써 1등도 꼴찌도 없다.공부보다 차라리 노동의 의미를 알고 싶은 학생은 교실밖에 나가 닭을 치거나 농장 일,도자기 만들기등 노동체험을 하면 된다.
이처럼 철저한 학생중심의 교육과정을 운영하면서 학생들의 인성회복을 도와 주는 사람들은 활짝 열린 마음으로 상담자이자 친구역할을 하는 헌신적 교사들.
자유로운 공동체 교육 분위기 덕분에 입학당시의 얼어붙은 마음,폭력을 휘두르던 분노.억울함.오만도 사그라져 학생들은 다른 사람을 존중하는 인간으로 성숙해간다.그동안 졸업생 2백15명 가운데 대부분은 진학하거나 취업했고 19명은 다른 사람을 돕겠다며 성직자의 길을 택했다.
해마다 전국 학교에서 갖가지 사건으로 낙인찍힌채 아무런 대책도 없이 거리로 내몰리는 퇴학생이 2만5천여명.그러나 이들을 기꺼이 떠맡아 교육하는 학교는 영산성지학교뿐이다.
이 학교 지원자는 해마다 늘지만 정부의 재정지원마저 받지못해상당한 어려움을 겪고 있다.학생들이 부담하는 등록금과 기숙사비외에 부족한 예산은 용돈 정도의 봉급밖에 못받는 교사들이 학생들과 계란.도자기를 팔아 충당하는 실정이다.
영광=강양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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