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석학이 Yes 해야 테뉴어 준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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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김판기(37·사진) 서울대 수학과 교수는 2006년 8월 임용됐다. 미국 일리노이대에서 2004년 8월부터 2년 동안 교편을 잡다가 국내로 유턴한 학자다. 미국 경력을 합해도 교수 경력은 4년에 불과하다. 그는 고려대를 나와 워싱턴주립대에서 학위를 받았다. 자교 출신 교수 비율이 91%에 이르는 서울대에선 드문 경우다. 그가 최근 서울대 자연대의 ‘테뉴어(예비정년)’ 심사를 통과했다.

김 교수가 젊은 나이에 비서울대 출신으로 예비정년 심사를 통과한 파격에는 국제 학계의 평가가 결정적 역할을 했다. 서울대 자연대의 테뉴어 심사엔 다른 단과대학에 없는 특이한 과정이 있다. ‘해외석학 평가레터’다. 단순한 추천서와는 차원이 다르다.

자연대는 각 학문 분야의 세계 석학 10명 안팎을 선정해 ‘해외 평가위원’으로 위촉한다. 이들에게 구체적인 질문을 보낸다. 평가받는 당사자가 보면 기분 나쁠 정도로 공격적인 항목도 있다. 홍승환 자연대 교무부학장은 “온정주의나 학연을 배제하고 대상자의 세계적 수준을 가늠할 수 있는 평가”라고 설명했다.

김판기 교수의 경우 평가 대상에 오르자 수리과학부는 심사 소위원회를 꾸렸다. 위원회는 김 교수의 전공인 ‘확률론과 금융수학’ 분야의 석학 10명을 선정했다. 로런트 살로프 코스트 코넬대 교수, 마틴 바로 브리티시컬럼비아대 교수, 알렉산더 그리고르 얀 독일 빌레펠트대 교수 등 이 분야의 최고 전문가였다. 모두 ‘수학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필즈상’을 받았거나 그와 동급의 석학들이다. 이우영 학부장은 석학들에게 이 같은 질문이 담긴 편지를 보냈다.

▶김 교수의 업적을 구체적으로 평가해 달라 ▶같은 또래 학자 중 김 교수는 톱 클래스인가 ▶당신이 속한 대학 학과에 지원한다면 테뉴어를 받아주겠는가 같은 구체적인 내용이었다.

석학들의 답장도 구체적이었다. “다른 주니어 학자들은 잘 모르겠지만 김 박사는 이미 스타다” “4년이라는 짧은 교수 경력에도 14편의 탁월한 논문을 발표했다” “수학 확률론 최고 권위의 저널에 이름을 올린 젊은 유망주다” 등의 내용이었다. “우리 학과에 지원한다면 당장 테뉴어를 받아주겠다”는 답변도 있었다. 김 교수와 함께 심사를 통과한 이상혁 교수의 경우 ‘이 분야의 세계 기록’ ‘최근 5년간 이 분야 최고 논문’이라는 답변을 받았다고 한다.

이우영 학부장은 “대답이 ‘괜찮다’ ‘잘 모르지만 뛰어나다’는 정도의 수준이면 무조건 탈락이다. 이름도 모르면 재고할 가치도 없다”고 설명했다. 그 분야의 국제적 명성이 없으면 테뉴어를 받을 수 없다는 얘기다.

김 교수는 지난 여름방학 때 티셔츠와 청바지, 운동화 차림으로 연구실에서 살다시피 했다. ‘세계 수준의 연구중심대학’ 사업에 낼 ‘첨단·융합 전공’ 계획서를 작성하는 데 매달렸다. 그가 만들고자 하는 전공은 ‘금융수학’이다. 파생상품을 만들고 계산하는 차원이 아니라 현 시스템을 대체할 수 있는 모델을 제시하는 게 목표다. 지속되는 금융 불안에 대해 김 교수는 “확률적으로 작은 위험을 무시했기 때문이다. 작은 위험도 중요하게 보고 접근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서진호 연구처장은 “최근 2년간 임용된 교수 중 가장 주목할 만한 재원이다. 서울대가 SCI 논문 분야에서 성장하고 있는 것도 이런 교수들 덕”이라고 설명했다. 서울대는 지난해 SCI(과학기술논문색인)에 4291편을 등재해 세계 24위에 올랐다.

강인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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