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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개혁을 해야 하는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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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우리 사회는 지금 진정한 개혁에 목말라 있다. 그래서 개혁에 대한 논의가 범람하고 있다. 문제는 방향이다. 변화를 수용해 21세기 선진사회로 갈 것인지, 아니면 19세기의 담론에 파묻혀 우리 사회를 퇴보시킬 것인지는 개혁의 방향이 결정해줄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떠한 개혁을 해야 하는가.

첫째, 세계의 진운에 맞는 개혁을 해야 한다. 세계의 정치.군사는 미국이 주도하는 일극체제며, 세계경제는 3극체제다. 미국의 한 축, 유럽이라는 다른 한 축, 그리고 BRICs(브라질.러시아.인도.중국)가 제3의 축이 돼 가히 세계경제를 3분할하는 형세가 됐다. 이러한 역학관계 속에서 일본은 우리보다 훨씬 더 유연하게 세계적 자원을 활용하고 있다. 정치.군사적으로는 미국과 공고한 관계를 구축하고 있다. 그러나 경제적으론 BRICs와의 긴밀한 관계 구축에 매우 적극적이다. 중국도 앞으로 20년간 화평굴기(和平起)의 정책기조를 가져갈 것이라고 한다. 미국을 중심으로 하는 세계체제와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면서도, 경제적으로 강한 나라를 만들겠다는 뜻이다.

세계의 흐름은 이러하다. 그런데 우리는 19세기의 논쟁을 되풀이한다. 친청(親淸).친일.친러로 나누어 세력 다툼을 하던 습관이 남아서일까. 외교통상 주 대상국이 미국인지, 중국인지는 선택사항이 아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이들 나라로부터 관심과 존중을 받을 수 있도록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게 우리의 실력을 쌓는 일이다.

둘째, 실사구시의 개혁을 해야 한다. 명분에 사로잡힘 없이 실질을 숭상해야 한다. 지금 우리 사회를 지배하는 명분은 평등을 가장한 하향 평준화다. 세계 경쟁이 가속화하는 현실을 직시한다면 지식력을 높이는 일이 중요함을 절감할 것이다. 다시 가까운 일본의 새로운 세계 전략을 보자. 그들의 목표는 일본의 지식력을 세계 첨단으로 끌어올려 세계를 무대로 조업하며, 그로 인한 수익을 다시 교육과 기술 개발에 투입하는 선순환 구조의 구축이다. 우리도 교육과 지식의 국제경쟁력을 높이고, 세계적 수준의 지식산업을 육성하는 일이 시급하다.

셋째, 사고체계와 시스템 전체를 고치는 개혁이 돼야 한다. 포퓰리즘과 단기적 처방의 유혹에서 벗어나 장기적 비전을 실현하고 선진화를 도모할 수 있어야 한다. 경제가 과도하게 팽창하면 한번의 구조조정기가 온다는 것을 납득하고 대비할 수 있어야 한다. 1997년 외환위기는 매우 고통스러웠지만 구조조정의 절호의 기회이기도 했다. 그러나 우리는 성급한 타협으로 부동산 거품과 카드 거품을 양산해 새로운 도약의 기회를 상실했다. 중국은 자발적으로 구조조정 기간을 선택했다. 이것이 최근의 '차이나 쇼크'다. 올 초에 필자가 일본경제단체연합회를 방문했을 때 그들은 이를 예견하고, 각종 대비책을 강구하고 있었다. 문제는 시스템 전체를 읽지 못하고, 사건의 진행에 일희일비하는 우리에게 있다.

개혁을 통해 우리는 보다 투명하고 유연한 사회를 만들 수 있어야 한다. 기업개혁.정부개혁.노동개혁이 이와 같은 방향으로 이뤄진다면 성장과 공동체를 동시에 살릴 수 있을 것이다.

지난 총선은 정치권의 일대 개혁을 요구했다. 여당은 선동정치와 포퓰리즘으로부터 자유로워져야 한다. 야당은 부패와 수구의 과거로부터 완전히 벗어나야 한다.

좌에 있든, 우에 있든 추구하는 국가의 목표는 큰 틀에서 일치한다. 한편으로 자주 국가를 건설하며, 다른 한편으론 골고루 잘사는 민주복지사회를 구현하는 것이다. 문제는 이를 실현하는 방법에 있다. 개혁의 방식은 투명해야 하며, 그 결과는 예측 가능해야 한다. 많은 개혁 의제를 제시하면서 그 결과를 알 수 없게 하는 것은 개혁의 책임을 회피하는 것이다.

개혁은 말로 하는 것이 아니다. 실천하는 것이다.

이각범 한국정보통신대 교수.사회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