對北정보망에 바친 식량難 이모저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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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지난해의 대홍수와 이로 인한 극심한 식량난에 시달리는 북한이최근 덮친 홍수로 최악의 8월을 보내고 있다.그러다 보니 「먹는」얘기가 최대 관심사가 돼있고 뒷자리에서는 「굶주림」과 관련한 아사자(餓死者).탈북자.질병등의 단어가 일상 화됐다는 것이다. 중국 옌볜(延邊)과 해외 채널을 통해 최근 몇달간 우리의대북(對北)정보망등에 수집된 것중 특히 눈길을 끄는 대목의 하나는 평양의 유민(流民).지금까지 평양을 네차례 방문한 한 외교 소식통은 『평양 인구가 1년전에 비해 1~2배는 늘어난 느낌』이라고 전했다.그는 또 『평양 주변에 수천명이 모이는 시장도 생겼다』고 증언했다.그리고 이 시장에는 북한 화폐 대신 일본 엔화.미국 달러화,그리고 외화바꿈돈이 상당량 통용되고 있다고 전해진다.
정부 당국자는 주민의 이동을 엄격히 통제하고 있는 북한,특히평양에서의 이같은 현상에 대해 배고픔을 견디다 못한 지방주민들이 그나마 배급이 이뤄지는 평양에 모여들고 있으며 어느새 시장도 형성된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통일원도 북한 당국이 지난 4월부터 평양 통제를 느슨하게 하기 시작했다면서 통제의 고삐를 풀 수밖에 없는 상황에 주목하고 있다.
북한 당국이 항구를 드나드는 외국배에 대해 돈 대신 식량을 요구하는 사례도 있다.북한은 지금까지 자국 항구를 드나드는 외국배에 대해선 당 2원 정도의 입항료(入港料)를 받아왔다.따라서 북한의 공식환율(2원=1달러)을 적용할때 1천 급 선박의 경우 1천달러를 내야 하는 것이다.그러나 최근 동해안 나진항에입항한 배에 대해 돈대신 식량을 요구,선장을 어리둥절케 했다.
한편 식량난이 장기화되자 북한 주민들은 각종 대체식량을 궁리,버티고 있다.예컨대 옥수수에 미숫가루를 섞은 「속도전가루」는이미 옛말이 됐고 요즘은 옥수수에 콩비지를 섞어 끓인 「남새밥」과 배를 물에 넣고 끓인 「배죽」마저 등장한 실정이다.아예 푸성귀만 삶은 국물로 끼니를 때우기도 한다는 것이다.
또 북한 당국은 식량난으로 인한 주민들의 원성을 외부로 돌리기 위해 각종 관제(官製)유언비어를 퍼뜨리고 있다.북한 주민들사이에서는 최근 『남한때문에 식량 사정이 나빠졌다』는 루머가 돌고 있는데 남한이 워낙 비싼 값에 중국산 쌀을 사들이기 때문에 중국이 북한에 쌀을 주지 않고 남한에 팔고 있다는 것.그러나 이 정도일 뿐 식량난 타개를 위한 적극적인 모습은 찾기 어렵다.사실상 손을 놓은 상태라는 것.중국의 옌볜 지방정부는 북한.중국 국경 밀무역이 활발해지자 지난달 북측에 『1인당 5천원(중국인민폐)한도내의 자유시장을 개설하자』고 제의했으나 함경북도 당국은 『상부가 결정할 사안』이라며 차일피일 미루고 있다.
최원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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