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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시의 미국, 케리의 미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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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6개월 앞으로 다가온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공화당의 조지 W 부시나 민주당의 존 케리 후보가 압승을 노리고 있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라고 미국의 정치학자인 한스 노엘 교수(UCLA)는 말한다. 압승은 절대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이 두 사람의 속내라는 것이다. 이들이 노리는 것은 '50%+1'의 아슬아슬한 승리라고 '빨간 미국과 파란 미국'의 저자인 노엘 교수는 주장한다.

미국에서 빨강은 공화당을, 파랑은 민주당을 상징한다. 미국 사회가 지금처럼 빨강과 파랑으로 확연히 갈라져 서로 소 닭보듯 한 적이 없었다는 것이 그의 진단이다. 이제 둘 사이에는 보수와 진보라는 정치적 노선 차이를 넘어 문화적 존재 양식의 차이가 가로놓여 있다고 말한다.

서로 몸담고 사는 세상이 다르기 때문에 미국 정치의 장점인 타협의 기술을 통해 소통과 화해를 추구할 수 있는 단계를 지났다는 것이다. 그 차이는 민주당 지지자들의 소굴인 샌프란시스코와 공화당 지지자들의 아성인 텍사스 슈가랜드의 차이만큼이나 크고 깊다는 것이다.

선거 결과로 결판나는 것은 '너의 미국'아니면 '나의 미국'이지, 어차피'우리의 미국'이 아니기 때문에 최선의 승리는 최소 비용으로 최대 산출을 확보하는 경제적 승리라고 설명한다. 즉 미국식 민주주의의 매력이라고 할 수 있는 50%+1의 승리야말로 투입 비용을 최소화하면서, 지지자 개인에게 돌아가는 전리품의 몫을 최대화할 수 있는 가장 이상적 승리라는 것이다.

현재 두 당은 돈과 인력 등 선거전의 자원을 50개주 중 16개주에 집중하고 있다. 플로리다에서 미주리.오하이오.네바다까지 선거 때마다 지지 정당이 왔다갔다 하는 이른바 '스윙 스테이트(swing state)'들이다. 저인망식 득표전략이 아니라 필요한 표만 노리는 표적식 득표 전략이다. 빨강과 파랑 사이에서 망설이는 15~20%의 부동표가 주로 몰려 있는 이들 주에서 누가 한 표라도 더 끌어오느냐가 승패의 관건이다.

부시의 미국과 케리의 미국 사이에는 넘기 힘든 장벽이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케리의 미국은 국제여론에 신경쓰는 미국이다. 아무리 힘이 세도 남과 함께 가는 게 좋다고 보는 미 동부 엘리트들의 국제주의적 시각이다. 부시의 미국은 남의 눈치 볼 것 없이 스스로 옳다고 생각하면 뭐든 할 수 있다고 믿는다. 케리의 미국은 정부의 개입과 지원이 불가피하다고 보는 반면, 부시의 미국은 정부 개입은 적을수록 좋다고 본다. 부시의 미국은 기업가와 기독교의 미국이며, 낙태와 동성(同性)결혼에 반대하는 미국이다. 케리의 미국은 종교적 구속을 거부하는 미국이며, 낙태와 동성 간 결합을 인정하는 미국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은 물질적 부를 존중하고 경쟁과 기회균등.자유와 자조(自助).근면이라는 미국적 가치에 대한 신념에서는 차이가 없어 보인다.

그 바탕은 철저한 개인주의다. 미국에서 정치적 스펙트럼의 기준점이 중간보다 오른쪽에 위치해 있을 수밖에 없는 이유다. 반면 유럽 정치의 기준점은 중간보다 왼쪽에 위치해 있다. 개인주의에 우선하는 조합주의적 전통 때문이다.

우리의 기준점은 어디인가. 총선 이후 각 당의 논의가 백화제방(百花齊放)이다. 이념정당보다 실용정당이라는 말도 들리지만 현실을 핑계로 사유의 빈곤함을 덮으려는 편의주의적 발상 같아 아쉽다.

역사와 문화적 전통에 비추어 우리의 기준점은 미국보다는 왼쪽, 그러나 유럽보다는 오른쪽 어디에 위치할 것 같다. 제대로 고민할 수 있는 정치적 환경이 해방 이후 처음으로 조성됐다. 결코 부질없는 고민이 아니다.

배명복 순회특파원 <워싱턴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