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고작 300억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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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 유상철 베이징 특파원

"북한 김정일(金正日)국방위원장이 중국에 지원을 요청한 액수가 겨우 2억위안(약 300억원)이라고?"

지난달 30일 '金위원장이 최근 방중 기간 중국에 2억위안 상당의 무상 지원을 요구했다'는 보도에 대한 일부 독자의 반응이다. '중국이 그렇게 환대했다며 고작 2억위안이냐'는 의문도 제기했다. 사실 '2억위안'이라는 얘길 처음 들었을 때 '2억달러'가 아닌가 해서 몇차례 확인을 해야 했다. 너무 액수가 적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거듭 확인해도 역시 '2억위안'이었다. 중국은 2002년 북한에 5000만위안 상당의 물품을 무상 지원했다. 또 지난해 12월 수만여명의 사상자를 낸 이란 대지진 당시 중국은 두차례에 걸쳐 1500만위안을 원조했다.

중국인 친구들에게 중국이 대략 얼마의 무상 원조를 하면 보통사람들이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 대부분 수천만위안이란 대답이었다. 한 사람은 2002년 중국이 아프가니스탄 재건을 위해 5년에 걸쳐 1억5000만위안을 지원한다고 발표했을 때 너무 많다 싶어 깜짝 놀랐다고 했다. 중국은 2억위안이 많다고 생각한다. 때문에 金위원장 방중 기간 이를 당장 수용 못하고 실무진을 통해 조정작업을 벌이고 있다.

그런데 어째서 적지 않은 한국인은 이같은 액수가 적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물론 한.중 양국 간 소득 격차에서 오는 돈 단위에 대한 생각의 차이가 한 이유가 되겠다. 또 우리 입장에선 동포인데 반해 중국으로선 다른 민족이란 것도 한 원인이 될 것이다. 그러나 그보다는 우리도 모르게 돈 단위에 대한 사고(思考)가 허황되게 부풀려졌기 때문이 아닐까. 수십억원이 쉽게 오가는 '차떼기', 매 주말 수십억원.수백억원의 로또 부자를 탄생시키는 현실이 2억위안쯤은 우습게 여기는 풍조를 만든 것은 아닐까. '땅을 열 길 파봐라. 땡전 한푼 나오나'. 어린 시절 물건을 조금만 소홀히 다룰라치면 벼락같이 떨어지던 어른들의 호통이다. 중국이 인색한 것인가, 아니면 우리 인식에 문제가 있는 것일까.

유상철 베이징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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