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중남미서 미국 목줄 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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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미국이 우리의 앞마당을 넘보면 우리도 미국의 안마당에 발을 들여 놓겠다’.

최근 그루지야 전쟁 승리로 기세가 등등해진 러시아가 미국의 턱밑인 중남미 지역에서의 영향력 확대에 적극 나섰다. 중남미의 쿠바·베네수엘라·볼리비아 등 반미 국가들과의 외교·군사·경제적 유대 강화에 발벗고 나선 것이다.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가 러시아와 국경을 맞댄 그루지야· 우크라이나 등으로 영향력을 확장하려 하고, 미국이 폴란드·체코에 미사일 방어(MD) 기지를 건설하려는 계획에 정면으로 맞대응하겠다는 전략이다. 중남미에는 콜롬비아를 제외한 대다수 국가에 좌파 정권이 들어서 있다.


러시아 북해함대 소속 핵 추진 미사일 순양함 ‘표트르 벨리키’호와 구축함 ‘아드미랄 차바넨코’호 등 4척의 군함이 22일 오전 바렌츠해의 세베로모르스크 기지를 떠나 베네수엘라로 출발했다고 러 리아노보스티 통신 등이 보도했다. 11월 중순 베네수엘라에서 열리는 양국 합동훈련에 참가하기 위해 2만8000㎞의 대장정에 나선 것이다. 러시아 함대가 냉전 이후 서반구에서 열리는 훈련에 참가하기는 처음이다.

500여 기의 각종 대함·대공 미사일을 탑재한 2만3000t급의 북해함대 주력함 표트르 벨리키는 미국 항모에 맞서 단독으로 전투를 펼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다. 구축함 아드미랄 차바넨코는 최고의 잠수함 격침 능력을 갖췄다. 베네수엘라 측에서는 미사일 프리깃함과 초계함·잠수함 등이 훈련에 참여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훈련은 중남미의 대표적 반미 국가 베네수엘라와 러시아의 유대 강화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중남미의 반미 노선을 이끌고 있는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도 이번 주 러시아를 방문한다. 차베스는 러시아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남미 국가들은 미국의 영향력에서 벗어나기 위해 러시아와 강력한 우호 관계를 유지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러시아는 또 미국 남부 플로리다에서 불과 144㎞ 떨어진 쿠바의 루르데스 레이더 기지를 복원하겠다는 뜻을 내비쳤다고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IHT) 등이 최근 보도했다.

러시아는 또 다른 남미의 반미 국가 볼리비아와의 에너지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러시아 국영 가스회사 가스프롬 지도부는 18일 볼리비아 국영 에너지회사와 현지 가스전 탐사·개발을 공동 추진키로 합의했다.

유철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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