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 당분간 안 빌려준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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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1면

국민연금이 당분간 주식 대여를 중단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국내 주식시장에서 공매도가 위축될 것으로 보인다. 국민연금은 국내 기관 중 가장 많이 주식을 빌려줘 왔었다.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 김문수 팀장은 23일 “공매도가 시장의 변동성을 키우고 이에 따라 기금 운용을 어렵게 만든다는 우려가 많아 주식 대여를 일단 중단했다”고 말했다. 그는 “언제부터 대여를 중단했는지, 그간 대여 규모는 얼마인지는 밝힐 수 없다”며 “언제 주식 대여를 재개할지도 시장 상황을 보고 판단하겠다”고 덧붙였다.

국내 규정상 주식을 빌리지 않고 공매도를 하는 ‘네이키드 쇼트 셀링(naked short selling)’은 금지돼 있다. 따라서 국민연금이 주식 대여를 중단하면 공매도를 위한 주식을 빌리기 어려워져 공매도가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업계에서는 국민연금이 지난달 말 현재 1조5000억원어치의 주식을 외국계 증권사들에 빌려준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간 공매도는 주가 하락을 부추기는 주범으로 지목받아 왔다. 굿모닝신한증권에 따르면 국내 공매도 거래는 지난해 20조8300억원에서 올 들어 8월까지 26조9400억원으로 늘었다. 지난해(월평균 1조7300억원)보다 두 배 가까이로 늘어난 3조3600억원을 매달 공매도로 시장에 쏟아낸 셈이다. 안팎으로 공매도에 대한 비난이 거세지면서 전날 전광우 금융위원장도 “필요하면 공매도 규제의 강화를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앞서 미국·영국·프랑스·캐나다·독일·호주·대만 등은 공매도를 제한하는 조치를 잇따라 내놨다. <본지 9월 23일자 e1면>

국민연금까지 나서 간접적으로 공매도를 어렵게 만들면서 시장에서는 주가 상승을 점친다. 공매도한 주식을 갚기 위해 되사는 과정(쇼트 커버링·short covering)에서 매수세가 몰리며 주가가 반등할 것으로 기대되기 때문이다. 굿모닝신한증권 서준혁 연구원은 “지난 3개월간의 공매도 가운데 10~20%는 쇼트 커버링의 대상이 될 수 있으며 금액으로는 1조3000억~2조6000억원 수준에 이를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공매도 수량이 급증한 삼성테크윈·두산인프라코어·한진해운·하이닉스를 비롯해 공매도 금액이 늘어난 LG전자·현대중공업·국민은행·LG디스플레이·삼성중공업 등을 유망하다고 꼽았다. 대신증권 이승재 연구원은 “한진해운·기아차·GS건설·현대미포조선·현대산업·현대제철·POSCO 등도 쇼트 커버링이 시작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고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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