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문창극 칼럼

탐욕의 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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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성공의 환희 속에서 실패의 씨앗이 자란다고 말한다. 번영케 만든 요소가 뒤에는 멸망의 동기가 되기도 한다. 남보다 용감하여 성공한 사람이 그 용기가 넘쳐 만용으로 변했을 때 패배하게 마련이다. 때로는 미덕으로 불리던 것조차도 지나치면 문제를 일으키기도 한다. 미국 금융시장의 추락을 보면서 나라에도 똑같은 원리가 적용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국은 자유시장의 대명사처럼 불리는 나라였다. 그 자유가 미국 번영의 밑거름이었다. 그러나 그 자유가 넘쳐 시장이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되면서 필연적으로 금융대란이 올 수밖에 없었다. 자본주의가 자유를 극대화하기 위해 인간이 발전시켜 온 시스템이라고 한다면, 그 자유가 지나쳐 그 시스템을 흔드는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평등이라는 가치가 소중하여 공산주의를 탄생시켰지만, 그 평등이 지나쳐 공산주의가 붕괴됐듯이 말이다. 문명 역사가 아널드 토인비가 “문명은 (외부로부터)타살되어 몰락하는 것이 아니라 자살하는 것”이라고 말했던 것도 같은 맥락일 것이다.

이번에 부도난 리먼브러더스의 CEO였던 리차드 풀드의 지난해 보수는 4500만 달러였다. 또한 메릴린치의 CEO였다가 지난해 은퇴한 스탠리 오닐 역시 1억6100만 달러의 퇴직금을 받았다. 풀드의 경우 하루에 12만 달러를 번 셈이다. 지난해의 경우 미국 상장회사 CEO의 평균 보수는 보통 근로자의 평균 344배라는 통계도 있다. CEO들이 아무리 탁월한 인간이라 해도 어떻게 고급인력의 1년 연봉에 해당하는 돈을 하루 만에 벌 수 있을까. 이런 제도가 윤리적일까. 기업은 망해도 기업인은 떼부자가 되는 부도덕이 제재를 받지 않고 있다. 자기 능력보다 더 큰 집에 살기를 원하는 사람들 때문에 주택자금 부실 대부가 이루어지고, 더 높은 이자소득을 좇던 투기의 마음들이 모여 이번 사태를 만든 측면이 있다.

미국이 금융대란을 수습하기 위해 7000억 달러라는 천문학적 돈을 투입한다. 물론 단기적 금융처방으로 경제 시스템의 붕괴는 막을 수 있을지 모른다. 그렇지만 이번 사태는 앞의 예에서 보듯 미국의 자본주의가 병들었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그 병은 한마디로 ‘탐욕의 병’이다. 인간은 욕망 덩어리라는 것을 누구나 인정한다. 그러나 그 욕망이 인류 발전의 힘이요, 부의 생산 원천이기도 했다. 욕망이 건강하게 조절될 때 사회는 활력을 찾고 번영하는 것이다. 욕망이 이성과 책임의식에 의해 절제될 때 탐욕으로 타락하지 않는다. 문제는 탐욕이라는 병이 미국 엘리트 사회에 급속히 퍼져가고 있다는 점이다. ‘돈이 전부’라는 생각이 미국의 엘리트들에게 만연되어 가고 있다. 하버드 대학신문 하버드 크림슨에 따르면 2008년 졸업생 가운데 39%가 엄청난 연봉을 주는 컨설팅회사나 투자은행 같은 금융분야로 간다는 것이다. 이러한 경향에 대해 일부 교수들은 “아이비 리그가 월스트리트의 보충대냐”고 꼬집기도 한다.

미국은 이런 나라로 출발하지 않았다. 그들의 조상은 열심히 일하는 것을 미덕으로 삼은 프로테스탄트였다. 개척시대 땀흘려 부를 쌓아 갔던 자영농들이 미국 경제의 뼈대를 만들었다. 미국 기업인 역시 창조적 모험심을 가진 사람들로 1950년대 미국의 황금시대를 열었다. 근면성, 실용성, 개인의 독립성 등에 힘입어 번영의 시대를 이루자 과거의 미덕은 잊혀지기 시작했다. 쉽게 돈벌고 편하게 성공하는 것을 추구하게 된 것이다. 이런 미국 사회를 두고 “달콤한 디저트만 좋아하는 사회”라고 평하기도 한다. 나는 미국 금융위기의 본질은 바로 이러한 자본주의 정신의 위기에서부터 온 것이라고 본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미국 금융위기로 부터 깨달아야 할 것은 정신의 문제다. 한 사회의 흥망을 이끄는 것은 물질에 있지 않다. 물질은 정신을 따라가게 마련이다. 바른 정신이 지배하는 사회는 반드시 번영하게 되어 있다. “쉽게 번 돈은 쉽게 사라진다. 땀흘리지 않고는 열매를 딸 수 없다. 부지런한 사람만이 성공할 수 있다. 정직이 재산이다. 신뢰를 지켜야 한다. 낭비하지 말고 절약해라. 교만하지 말고 겸손하라. 남의 성공을 질투하지 말라….” 이런 미덕들은 역사와 이념을 초월해 작동하는 가치들이다. 인류의 보편적 경험과 역사의 법칙은 이러한 미덕들이 반드시 성공한다는 것을 가르치고 있다. 그러나 요즘 젊은 사람일수록, 머리가 좋은 엘리트일수록 빠른 길을 가고싶어 한다. 이런 원칙과 가치를 비웃거나 포기하는 순간 개인도 죽고, 나라나 문명도 멸망하는 것이다.

문창극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