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지성] 詩 빼앗으려 살인까지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논어』『맹자』만큼 잘 알려진 책은 아니지만 중국의 역사와 문화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고전을 많이 번역해내는 사람이 있다. 임동석(53·건국대 중어중문학) 교수가 그인데, 이번엔 『당재자전』과 『잠부론』 두 권을 동시에 역주해 냈다. 이에 앞서 그는 『세설신어』『한시외전』『설원』『수신기』『서경잡기』등 30여 종을 이미 국내 처음으로 번역해 소개한 바 있다.

『당재자전(唐才子傳)』은 당나라의 시(詩)와 문학을 반짝이게 하는 천재와 기인들의 이야기다. 왕유·두보·이백·송지문·맹호연·백거이 등 저명 인물에서부터 승려와 여인에 이르기까지 모두 278명의 삶과 정신의 초월적 경지가 278편의 짤막짤막한 전기 속에 펼쳐져 있다.

당시(唐詩)를 낳은 시대적 배경을 인물중심으로 살펴보다 보면, 이백과 두보가 거론되는 전기에 나란히 함께 실릴 만한 시인 묵객들이 이렇게 많았는가 하는 놀라움을 경험하게 된다. 저자 신문방(辛文房)이 1304년에 펴낸 원본은 현재 전해지지 않지만, 일본과 중국에서 전해오는 몇 개의 판본을 참고해 임 교수가 완역본으로 새로 탄생시켰다.

당나라 시대상과 이 책의 분위기를 잘 보여주는 사례가 당나라 초기 시인 송지문과 유희이 사이에 얽힌 일화다. “해마다 해마다 꽃은 같은 모습인데, 해마다 해마다 사람은 늙어 다른 모습일세(年年歲歲花相似, 歲歲年年人不同)” 송나라때 황견이 편찬한 『고문진보』에는 송지문의 작품으로 소개되고 있는 유명한 구절인데, 『당재자전』에는 “원래 유희이의 글귀로서, 그의 외삼촌뻘 되는 송지문이 이 구절을 빼앗기 위해 그를 죽였다”고 적혀 있다. 송지문이 나중에 사약을 받고 죽게 된 일에 대해선 “많은 사람들이 유희이를 죽인 업보라 한다”고 지적하면서도 송지문의 시풍에 대해선 “마치 양금미옥(良金美玉)같아 사랑하지 않을 수가 없다”는 인용문을 실어 놓고 있다.임 교수는 “당나라는 시 구절 하나를 얻기 위해 인척의 어린 사람을 살해하기까지 한 시대였다”면서 “천하 사람들의 자유를 인정하고 시의 세계를 지선(至善)으로 삼으면서, 기인의 돌출적 정서까지 수용할 만큼 넓고 화려한 시대였음을 책을 통해 느끼게 된다”고 했다.

한편 『잠부론』은 동한(東漢)시대의 유학자 왕부(王符, 85∼162)가 쓴 정치평론서이자 철학서다. 『논형(論衡)』『창언(昌言)』과 함께 동한시대 3대 고전으로 꼽히기도 한다. ‘잠부(潛夫)’란 공직에 일절 나가지 않는 자를 뜻하는 말인데, 저자 왕부 자신이 바로 평생을 독서와 저술로 일관한 ‘잠부’였다.

총 36편의 내용을 보면 정치의 득실, 관리의 사치와 부패, 백성에 대한 무책임한 군림 등을 폭로하는가 하면, 변방 이민족에 대한 정책과 국방의 중요성, 이민 정책의 실효, 점과 꿈의 해몽, 무당과 관상 등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당시 사회 풍조를 보여준다.‘잠부’를 통해 저자는 “위정자는 개개인의 행복과 안전을 적극적으로 책임지고 보장해 주어야 한다”면서 “부패와 낭비, 그리고 위정자의 위선이 척결되지 않으면 실행되지 않는다”는 생각을 펼쳐 보였다.

배영대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