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봤습니다] ② 사브 터보X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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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브 터보X

 1930년대 항공기 회사로 시작했던 스웨덴 사브는 유럽에서 ‘스칸디나비안 럭셔리’의 위상을 다져온 차다. 그러나 2000년 GM에 인수된 이후 특유의 개성있는 디자인이 빛을 잃으면서 럭셔리와 대중차의 사이에 끼여 제자리를 잡지 못했다. 연간 판매대수도 15만 대를 넘지 못하면서 자동차업계에서는 늘 ‘인수합병 대상’으로 거론돼 왔다. 최근 GM 경영이 어려워지면서 다시 매물로 나왔으나 아직은 눈독을 들이는 업체가 나타나지 않고 있다.

올 7월 국내 시장에 선보인 사브 터보X는 항공기 엔진회사로 시작했던 사브의 전통을 그대로 보여주는 차다. 사브가 자랑하는 터보 엔진 30주년을 기념해 만든 차로 딱 2000대만 생산했다. 국내에는 7대만 배정됐다.

전체적인 외관은 9-3와 비슷하지만 곳곳에 고성능을 보여주는 디자인이 드러난다. 라디에이터 그릴은 검은색이 도는 티타늄 소재를 사용했다. 헤드라이트와 안개등의 눈매도 날카롭다. 도어와 글로브 박스(사물함), 기어 손잡이 등을 모두 탄소섬유로 처리해 스포티함을 강조했다. 시트는 편안하면서도 코너링 때 좌우로 쏠리는 몸을 잘 잡아준다. 이 차의 심장은 V6 2.8L 24밸브 터보 엔진이다. 최고 출력 280마력에 최대 토크는 무려 40.8kg·m이 나온다. 터보의 힘이다. 6단 자동변속기와 엔진의 궁합이 잘 맞아 레이싱하는 듯한 기분을 맛볼 수 있다. 터보에 4륜구동이라 연비(L당 8km)는 기대하기 어렵다.

사브의 서스펜션은 국내 도로에 알맞다. 포장 상태가 좋지 않은 국도에서 서스펜션이 딱딱한 유럽차를 타면 멀미가 날 정도로 차가 튄다. 이런 점에서 터보X는 적당히 무르면서도 코너링에선 차체를 제대로 받쳐준다. 4륜구동이라 눈길·빗길에선 탁월한 성능을 발휘한다. 시동을 걸면 터보 엔진의 우람한 소리가 들려온다. 엑셀을 조금만 밟아도 어깨가 뒤로 젖혀지는 가속력을 충분히 느낄 수 있다. 조용한 일본차에 맛들인 운전자에겐 어울리지 않는다. 엔진회전수가 2000rpm만 넘어가면 저압 터보에서 터지는 강한 폭발음이 전달된다. 가속력을 좋아하는 자동차 매니어의 피를 끓게 하는 엔진음이다. 판매가격은 6750만원.

김태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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