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어마켓 랠리의 추억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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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호 26면

지난 주말 전 세계 증시가 급등세로 반전했다. 8000억 달러 규모의 공적자금 조성이라는 미국 정부의 ‘전례 없는 조치’가 큰 힘이 됐다. 다우존스는 3.35% 올라 전날의 급등세를 이어갔다. 영국 FTSE100지수는 8.84% 뛰었다. 부양책 발표가 겹친 중국 상하이지수는 9.45%, 홍콩 H지수는 14.25%나 올랐다. 프랑스와 독일 등 다른 나라 증시도 마찬가지였다. 18일 4.5% 상승했던 코스피지수가 이번 주초 한 차례 더 탄력을 받게 됐다.

지난해 연말 이후 길고 긴 약세장에 지쳤던 투자자들에겐 미국 정부의 발표는 단비였다. 개별 회사를 살리고 죽이는 선별 구제 방식 대신 부실 자산 덩어리를 정부가 통째로 맡아 처리하기로 방향을 바꾼 것은 의미심장한 일이다. 정부가 시스템 정비에 나서는 건 금융위기의 정점에서 전형적으로 나타나는 모습이다. 더구나 각국 중앙은행이 앞다퉈 돈줄을 풀고 있다. 이제 좋아질 일만 남지 않았느냐는 기대감이 고개를 들 만도 하다.

역사적으로도 이런 상황은 항상 유동성 장세를 불러왔다. 신용경색 상황에선 늘어난 돈이 실물로 가지 않고 금융시장 언저리를 맴돌기 때문이다. 기업은 외면한 채 주식과 채권, 원자재 시장에서 단기 승부를 걸었던 사례가 많았다. 3월 베어스턴스 사태가 벌어진 뒤 각 나라 증시가 함께 반등했을 때도 비슷한 분위기였다. 증권사들이 보는 코스피 반등 폭은 높게는 1800, 낮게는 1550까지 다양하지만 대개 1650 근처다. 주식을 갖고 있는 사람은 모처럼 안도 속에 랠리를 지켜볼 수 있을 듯하다.

하지만 지나친 기대는 금물이다. 실물경기 전망이 여전히 불확실하기 때문이다. 실물이 받쳐 주지 않는 유동성 장세는 오래가지 않는다. 1997년 외환위기 직후를 떠올려 보자. 국제통화기금(IMF)의 우산 속에 들어간 97년 12월 12일 350으로 바닥을 찍은 주가는 다음해 3월 초 581까지 뛰었다. 국가 파산을 면했다는 안도감에서였다. 하지만 주가는 다시 밀려 98년 6월 277까지 곤두박질친 뒤 IMF 체제 졸업이 눈앞에 보인 99년부터 본격적으로 상승했다.

미국의 금융위기도 이런 측면에서 볼 필요가 있다. 금융위기가 마무리되려면 시간이 필요하다는 게 일반적 전망이다. 미국 정부도 은행의 추가 도산을 염두에 두는 듯하다. 가장 큰 변수는 실물경기다.

미국은 말할 것도 없고 전 세계가 침체의 늪에 빠질 것이란 경고가 줄을 잇는다. 한국도 기업이 환 손실로 돈을 까먹고 있는 가운데 수출 증가세조차 둔화될 것이란 우려가 커지고 있다. 큰 그림으로 보면 주가가 W자나 L자로 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안도 랠리라는 파티를 즐기되 비상구를 확인하자. 유사시 비상구를 빠져나가려는 사람이 예전보다 훨씬 많을 것이라는 점을 염두에 두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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