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에게 정신적 웰빙식탁 차려주기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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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호 34면

요즈음 젊은 세대는 거의 모든 정보를 인터넷에서 섭취한다.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 10~20대가 인터넷에서 보내는 시간은 하루 평균 두 시간이다. 순수 독서 시간은 10분. 인터넷으로 정보를 빠르고 손쉽게 접할 수 있다면 사실 무엇이 문제인가? 왜 고리타분하게 책을 봐야 하는가? 이것은 중학교 1학년인 필자의 아들이 얼마 전에 내게 던진 질문이다.

사실 아이는 내 대답에 별로 관심이 없었다. 이들 세대에게 인터넷은 더 이상 질문의 대상이 아니라 공기나 물과 같이 생존에 필수적이면서 의식하지 않고 받아들이는 환경이 되어 버렸다.

디지털 세계는 글보다 영상이 우선이다. 글이 이성과 논리의 매체라면 영상은 감성과 감각을 소통한다. 지난여름 우리를 쓸고 간 촛불시위에서 보듯이 한 방송 매체에서 주저앉은 소 한 마리가 초고속인터넷망을 타고 순식간에 전 국민의 눈과 귀를 사로잡았다. 미국산 쇠고기가 실제로 어떠한 위험이 있는지 과학적 사실과 근거를 따지기보다 광우병 소의 이미지에 치를 떨며 우리는 거리로 나갔다.

정보가 머리로 가기 이전에 피부와 가슴을 먼저 때리는 것이다. 이렇게 공유된 정서는 빛의 속도로 확산된다. 인터넷에서는 글쓰기도 책과 다르다. 인터넷은 속도의 매체다. 가장 단순화된 정보를 가장 빨리 가장 많은 사람에게 전달하도록 수익 구조가 짜여 있다. TV와 마찬가지로 인터넷의 타깃 청중은 중학교 2학년 학력 수준이다.

인터넷에 복합적인 사고를 요하는 글은 잘 올라오지 않는다. 설령 그러한 글들이 올라온다 하더라도 곧 마우스 클릭 하나로 접근할 수 있는 선정적이고 자극적인 정보들이 독자의 시선을 빼앗아 간다.

디지털 미디어의 또 다른 특성은 작위적 현실을 만드는 것이다. 디지털 세대는 이미지를 조작하거나 편집 툴을 사용해 가상현실을 만들어 낸다. 이들은 복잡하고 지루한 현실엔 별 관심이 없다. 그보다는 게임과 같이 심플한 룰에 따라 승패가 갈리는 가상의 세상에 열광한다. 허구와 현실 사이에 우선순위를 두지 않는다. 예컨대 북한 김정일은 내 아들 세대에겐 게임의 캐릭터처럼 이해되곤 한다.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 정세나 북한 내부 권력의 역학관계, 그리고 남북통일 같은 진지한 이슈들은 이들에겐 별나라 이야기처럼 들릴 수 있다. 재미를 추구하는 그들에겐 김정일의 엉성하게 솟은 머리칼과 통통하게 튀어나온 배, 기묘한 복장이 주된 관심거리다.

인쇄 매체가 인류에게 질서의 세계, 즉 코스모스를 부과했다면 디지털 매체는 우리를 카오스로 이끌고 있다. 원인과 결과를 분간할 수 없고, 시간과 공간이 함께 뒤엉킨 카오스는 새로운 창조의 터전이 되기도 하지만 자라나는 세대에겐 균형 잡힌 정신적 성숙의 기회를 박탈할 수 있다. 사고와 사유를 감성과 감각이 대체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개인 미디어의 발달은 정보의 소비에 심한 편식증을 조장한다. 자기가 좋아하는 정보만 골라 섭취하면 균형 잡힌 지식을 얻을 수 없다.

디지털 미디어에 무방비적으로 노출돼 있는 다음 세대의 정신건강을 위해 웰빙 식탁을 차리는 주부의 마음이 절실하다. 정신적 웰빙 식탁을 어떻게 차려야 할까. 먼저 책을 가까이 해 복합적 사고를 키우도록 해야 한다.

책은 줄 쳐 가며 읽고, 메모하면서 읽고, 되풀이해 읽고, 가만히 내려놓고 생각한 뒤 다시 읽기에 편리한 지식 미디어다. 느리지만 음미하는 데 적합하다. 인스턴트 패스트푸드 대신 슬로푸드가 주목받듯이 슬로러닝(slow-learning)을 되돌아보아야 할 때다. 빠르고 편리하다고 해서 패스트푸드만 먹이는 엄마는 나쁜 엄마 아닐까.

인터넷 문화 자체를 슬로푸드를 요리하고 음미하듯 슬로러닝으로 방향 전환할 수 있다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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