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 거짓말에 너무 관대한 우리 法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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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호 34면

“은혜를 입은 상사에겐 죄송하지만 법정에서 거짓말을 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최근 고위 공직자 A씨의 비서가 법정에서 A씨에게 불리한 증언을 하고 나오면서 한 말이다. A씨는 뇌물을 받은 혐의로 기소된 상태였다. 비서는 “어떤 사람(뇌물을 준 혐의를 받고 있는 피고인)이 A씨의 사무실에 가방을 들고 찾아온 것을 봤다”고 밝혔다. 혐의를 뒷받침하는 결정적인 증언이었다.

당초 검찰은 비서의 입장을 고려해 진술서만 내고 법정에 세우지 않으려 했다. 하지만 A씨 변호인 측이 비서의 직접 증언을 요구해와 할 수 없이 증인으로 채택된 것이었다. 모시던 상관이나 동료가 지켜보는 공개 법정에서 설마 상관에게 불리한 증언을 하겠느냐고 기대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비서는 주위의 회유와 협박에 굴하지 않고 증언대에 서서 자신이 본 것을 당당하게 말했다. 젊은 비서의 모습에서 인간적인 괴로움을 감수하더라도 위증은 하지 않겠다는 신세대의 달라져 가는 가치관을 발견했다.

사법제도는 진실의 토대 위에 서야만 건강하게 작동된다. 형사소송법이 증인에게 “양심에 따라 숨김과 보탬이 없이 사실 그대로 말하고 만일 거짓말이 있으면 위증의 벌을 받기로 맹서합니다”라는 선서를 하도록 한 것도 진실을 추구하겠다는 강력한 의지의 표현이다. 그러나 젊은 비서의 모습과 달리 아직은 거짓 증언이 난무하는 게 우리의 현실이다. 법정이 거짓말 경연장이라고 극언하는 사람도 있다.

거짓말이 나쁘다는 것은 전 세계인이 모두 알고 있다. 특히 한국인이 거짓말을 싫어한다는 조사가 있다. 몇 년 전 세계가치조사(World Values Survey)에서 세계 각국의 4만3000명에게 “자신의 이익을 위한 거짓말이 정당화될 수 있느냐”고 물었다. 전체의 48%가 “절대 정당화될 수 없다”고 답변했는데 유독 한국인은 무려 70%가 그렇게 답했다. 조사 결과만 보면 한국의 ‘진실 토대’는 굳건해 보인다.

불행히도 실제 행동은 딴판이다. 판사 앞에서 선서까지 하고도 거짓말을 했다가 위증으로 기소되는 사람이 2004년 1587명에서 2007년 2011명으로 해마다 급증하고 있다. 거짓말에 법원·수사기관의 판단이 왜곡되고 범죄자는 법망을 피해간다. 부정부패는 만연하고 피해자는 억울함을 호소할 길이 없게 된다.

왜 한국인은 위증을 함부로 하는 걸까. 우선 당쟁으로 정권이 자주 바뀌면서 집권한 당파가 반대 측을 살상하는 보복의 악순환이 거듭된 역사적 경험이 ‘남에게 척을 지면 안 된다’거나 ‘좋은 게 좋다’는 식의 온정주의를 키웠다.

그러다 보니 남이 처벌받는 데 관여하기를 꺼리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또 이기적이고 배타적인 연고(緣故) 집단을 극도로 중시하는 풍토가 위증을 조장한 측면이 있다. 보고 들은 대로 증언하면 연고집단에서 “배신자”라고 따돌림을 받게 되고, 거짓말을 하면 의리 있는 사람으로 인정받는 가치의 도착이 큰 문제다.

이런 풍토 때문인지, 우리 사회는 위증사범을 너무 무르게 다룬다. 벌금·집행유예가 대부분이며, 단기 실형(6개월 내외)이 드물게 나온다. 미국에선 위증으로 기소된 사람 중 60~70%가 실형을 받는다. 평균 선고 형량도 22개월에서 32개월에 이른다. 우리는 수사기관에서 거짓말을 해도 처벌하는 조항이 없고 법원에서 선서를 한 다음 위증하는 경우만 처벌한다.

미국은 법원의 위증은 물론 수사기관에서 조사를 받으며 허위 진술을 한 것도 사법방해죄로 처벌함으로써 사법 정의를 구현하려고 애를 쓴다.사람들은 누구나 거짓말을 할 때 ‘발각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과 ‘잘못하고 있다’는 도덕적 죄책감을 동시에 느낀다고 한다. 따라서 거짓말을 줄이려면 진실은 반드시 밝혀진다는 믿음을 주고, 거짓말의 폐해가 심각하다는 인식을 확산시켜야 할 것이다.

자신의 거짓말로 인해 사회가 부패하고 경제가 망가지는 심각한 부작용이 뒤따르며, 거짓말을 하는 사람은 물론 전체 국민과 후손들까지 그 피해를 오롯이 감수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학교·사회가 거듭 교육할 필요가 있다. 사소한 위증이 발견되더라도 철저히 조사해 엄히 처벌하지 않으면 사법제도가 절대로 건강해질 수 없다는 인식을 사회 모두가 공유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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