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틀랜타리포트>승리,그것은 정신력의 성취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8면

승리는 프로에게는 돈을,아마추어에게는 메달을 준다.그러나 프로와 아마추어를 불문하고 운동 경기에서의 승리는 무엇보다 기량과 정신력의 성취를 재는 측도(測度)다.한 사람 또는 한 팀을놓고 본다면 기량 또한 정신력 수련이 결정하는 함수(函數)다.
관전자가 승리에 감격하는 까닭은 선수들이 획득하는 돈이나 메달때문은 아니다.그들이 그때까지 수련해 온 정신력의 아름다움과 엄숙함이 승리라는 이름으로 꽃피는 한순간의 황홀에 함께 몰입하는 것 때문이다.
정신력이라는 것은 본래 비가시적(非可視的)이다.그런데 운동경기장에서는 승리를 통해 이것이 범속한 마음의 눈에도 무지무지 분명하고 커다랗게 보이게 된다.25일 밤(버밍햄 현지시간) 한국과 이탈리아의 축구 경기가 끝난 다음 내가 처음 본 것은 불행하게도 한국팀의 처절한 패배뿐이었다.쉽사리 정체를 분석해 낼수 없는 분노가 치밀어 잠마저 뒤척이다가 언짢은 기분으로 그 잠을 깨었다.아침 산책길에 나서서야 뒤늦게 마음에 떠오른 것이한국팀의 패배가 아닌 이탈리아팀의 승리였다.
한국을 이기더라도 8강 진출은 아예 불가능한 조건에서 이탈리아는 싸움에 나섰다.시합이고 뭐고 오직 절망에다 마음을 맡기고축 늘어져 버리고 싶은 심정이 전 팀의 바닥에 아마 깔려있었을것이다.자기 팀에서 이런 심정을 털어내고 오직 스포츠맨십만이 붙일 수 있는 승리의 불을 플레이로써 붙인 두 선수가 있었다.
백넘버 7번 라파엘 아메트라노와 9번 마르크 브랑카가 그들이다.그들은 어떤 시합에서라도 최선을 다하지 않고는 못 배기는 그런 사람인지 모른다.그들을 일러 정신력의 사람이라고 부르고 싶다. 브랑카는 한국 골대 앞을 맹수처럼 서성거렸고 아메트라노는공을 잡아 그에게 보내 주려고 주로 오른쪽 라인을 따라 부지런히 오르내리고 있었다.후반전에 들어와 한국이 동점골을 넣은 다음부터 이탈리아팀의 전의는 뚝 떨어지는 듯 보였다.
그런데 이 두 사람만은 오히려 더욱 부지런히 움직였다.
미국 전역에서 수백마일씩 비행기나 자동차를 타고 와서 그날 밤 버밍햄 축구장에 모였던 한인 응원단의 숫자를 내 옆에 있던운동장 출입 베테랑 기자 한 사람은 1만명으로 추산하고 있었다.이들의 응원 소리로 운동장은 떠나갈 듯 했다.
상대적으로 기량 면에서 썩 뒤지는 판에 오로지 비쇼베츠 감독의 교묘하고 엄격한 전술과 잘 수련된 정신력이라기보다 이번에는꼭 8강에 진출해봐야겠다는 「악다구」에 주로 의존하는 우리팀 선수들의 승리를 응원하는 이들의 고함소리에는 안타 까움이 더 많이 들어있는 것으로 들렸다.그러나 선수와 응원단 사이에는 꽉일치하는 「축구 민족주의」가 넘쳤다.
참으로 어려운 것은 비기기만 해도 목적을 달성할 수 있을 때,이 비기기 목표를 처지지 않게 팽팽하게 유지하는 일인지도 모른다.우리팀은 이탈리아에 비기기만 하면 8강 진출이 확보돼 있었고 1-1이라는 그 시점(時點)의 스코어는 아주 이상적인 것이었다.그런데 이탈리아팀의 브랑카와 아메트리아노처럼 팽팽한 정신력을 수련해 낸 선수가 우리팀에는 없었던가 보다.
우리팀의 최성용 선수가 경기 종료 약 15분을 남겨 놓고 스로인 지체 때문에 옐로 카드 경고를 받은 까닭이 내 눈에는 최성용의 고의나 잘못 때문은 아니라고 비쳤다.그 공을 받을 다른선수들이 이탈리아 선수의 마크를 피해 충분히 공 격 쪽을 향해움직여 주지 않았기 때문에 불가피하게 지체가 일어난 것이었다.
경고를 받고 난 직후 순간적으로 우리팀은 오히려 더 얼어붙었다.그 사이 브랑카는 그날 시합에서 그의 두번째 골을 한국의 문안으로 집어 넣었다.
이탈리아의 승리가 이 두 선수의 정신력 수련의 결과임을 짐작해 내고서야 그 불빛에 대고 비로소 나는 한국의 패배를 다시 찬찬히 바라보았다.그날 밤 다른 운동장에서 열린 멕시코-가나 경기에서는 꼭 우리를 탈락하게 하려고 일부러 마련 된 듯한 스코어가 나왔다.동료기자 한 사람이 말했다.『운이 좋아서 남의 덕만으로 8강에 진출한 것보다 오히려 낫습니다.』 강위석 본사 논설고문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