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칼럼>붕괴위험 따질 시간 없어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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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경부고속철도가 개통되더라도 절대 타지 않을 겁니다.』 고속철도공단 한 직원의 고백이다.고속철도가 얼마나 주먹구구식으로 건설되고 있는지를 단적으로 대변하고 있다.
사실 광산 속으로 지나가는 경부고속철도 상리터널(본지 7월20일자 1면 보도등)을 취재하면서 기자도 꼭 같은 생각을 했었다. 터널이 지나가는 주변 광산의 도면을 입수했을 때 이 속으로 고속철도가 달릴 것이라고 생각하니 아찔했다.
광물을 캐고난 빈 굴들이 벌집처럼 뚫려 있고 폐갱도가 마치 실핏줄을 연상시킬 만큼 어지럽게 얽혀 있는 곳으로 고속철도가 지나갈 것이라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았다.
광산전문가들은 갱도와 빈 굴은 시간이 지나면 무너진다고 말한다.갱도를 파고 작업할 때만 무너지지 않도록 임시조치할 뿐이기때문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상리터널 구간 주위는 땅속에서 무너진 갱도 때문에 움푹 팬 흔적이 곳곳에서 발견됐다.
그런데도 건설교통부와 철도공단이 이 문제에 대처하는 것을 보면 과연 관계자들이 최첨단 기술이 요구된다는 고속철도를 건설할기술력이 있는지 의심이 갈 정도다.
두 기관은 92년 터널 설계업체로부터 뒤늦게 광산이 있다는 보고를 받고도 지난해 광업진흥공사에 지질조사를 의뢰하기까지 이사실을 쉬쉬해 왔다.그러면서 뒤로는 공사를 강행해왔다.
만일 건교부와 공단측이 위험판정이 날 경우 노선을 변경하겠다는 의지가 있었다면 조사가 끝날 때까지 터널공사를 중단했어야 옳았다. 결과야 어떻든 이미 노선 결정이 난 사항이니 밀고 가겠다는 속셈이다.
터널주변 광산지질조사에 참여했던 광업진흥공사 관계자는 『자세히 조사하고 싶었으나 공단측은 「뭘 그런 것까지 하느냐」』며 짜증을 냈다고 전했다.
이 관계자는 또 『조사에 참고하기 위해 다른 나라의 예를 수집했으나 광산을 지나는 고속철도는 없었다』고 말했다.
독일.프랑스.일본등은 노선결정전 사전조사를 철저히 하기 때문이다. 광진공 관계자들도 『중간평가 보고서에는 보강만 철저히 하면 노선변경은 필요없다고 결론을 내렸으나 가능하면 노선을 옮기는 것이 현명할 것』이라고 털어놨다.
고속철도는 안전성 확보가 무엇보다 우선돼야 한다.
승객들은 개통이 조금 늦어지더라도 안전하고 쾌적한 고속철도를원한다.건교부와 공단은 지금 건설하고 있는 고속철도가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인지 생각해 보길 바란다.
정재헌 사회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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