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 시조 백일장 4월] 초대시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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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십리 산골길에
오두막 한 채

강담 너머 내다보던
나이 잊은 가시버시

이 빠진 항아리같은 얼굴
겸연쩍게 웃더라.

어쩌다 창 너머로
산을 봐도 생각나고

미루 나무 꼭대기의
구름 봐도 생각나고

길섶의 쑥부쟁이를 봐도
어리어리 그 얼굴

◇약력
▶ 1977년 현대시학 추천완료 ▶ 시조집 『제일 낮은 음계』 ▶ 현대시조문학상·성파시조문학상 등 수상

◇시작노트

참 오래된 이야기다. 벽지 깊은 산골 학교에 근무한 일이 있었다. 아침에 해가 늦게 뜨고 오후에는 일찍 해가 지는 정말 깊은 산골이었다. 연초에 가정방문을 가기 위해 깊은 골짜기 길을 들어섰는데 한참 가다보니 산길 옆에 오두막 한채가 보였다. 종일 있어봐도 사람 그림자도 얼씬 않는 곳이라 사람을 보니 반가웠는지 돌담 너머로 나를 내다보고 있었는데, 자연의 일부처럼 늙으셨던 그 노부부의 얼굴이 오래도록 지워지지 않고 내 가슴 속에 남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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