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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개 낀' 한국경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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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총선이 끝났다.

그러나 총선이 끝나도 경제가 나아질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총선을 치르고 나면 뭔가 나아지겠거니 하던 막연한 기대는 썰렁한 경기 앞에 속절없이 사라졌다.

정치권은 한 목소리로 '민생'을 이야기한다. 그러나 정치권이 경제를 살리는데 기여할 일은 당분간 별로 없어 보인다. 국회가 열리면 그저 밀린 법안이나 더 늦지 않게 빨리 처리해 주고, 쓸데없는 정치공방으로 경제를 더 불안하게 만들지나 않으면 다행스럽겠다.

요즘 기업하는 사람들이 조용하다. 조용하다 못해 적막하다. 대기업들은 아직 본격적인 투자에 나서지 않고 있다. 수출로 벌어들인 현찰을 잔뜩 쥐고 앉아 꿈쩍도 않는다. 모두들 더 기다려 보자는 심산이다. 내수경기 회복에 목매고 있는 중소기업들은 하루하루를 넘기기가 버겁다.

경제부총리는 해외를 돌며 외국투자자들을 상대로 '주식회사 한국'의 가능성을 설명하느라 분주하다. 질문은 많이 쏟아지지만 선뜻 한국에 투자하겠다는 외국투자자는 찾아보기 힘들다. 외국인투자자들도 아직은 더 지켜봐야겠다는 자세다.

정부와 국내외 경제예측 기관들은 다투어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높이고 있지만 바뀐 숫자들이 영 피부에 와닿지 않는다. 수출호조를 빼고 나면 경제는 여전히 제자리 걸음이다. 기업들은 투자를 않고 소비자들은 주머니를 풀지 않는다. 투자와 소비가 살아나지 않고서는 일자리가 늘어날 수 없다. 취업이 어려워지고 실업자는 늘어난다. 살림살이가 쪼들리고 심사는 강퍅해진다.

왜일까. 불안하기 때문이다. 불안해서 투자를 못하고, 불안해서 마음놓고 돈을 쓰지 못한다. 불안감은 불확실성에서 온다. 총선이 끝났어도 불확실성은 가시지 않았다.

불확실성은 여러 곳에 있다. 대통령은 여전히 직무정지 상태다. 권한대행 체제의 행정부는 새로운 일을 벌이지 않는다. 부처별로 경제를 살리자며 부산한 움직임을 보이지만 현상유지가 기본이다. 헌법재판소의 대통령 탄핵심판이 얼마나 걸릴지,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도 확실치 않다. 헌재 결정 이후 정부의 정책 방향도 불확실하다. 새 판이 짜여진 정치권의 기상도도 흐릿하다. 새로 국회에 진입한 민주노동당의 행보도 궁금하다. 새로운 정치지형에서 노동계가 어떤 움직임을 보일지 가늠하기가 쉽지 않다. 잘 나가던 중국경제도 버블이 언제 꺼질지 불안하기 짝이 없다. 미국 경기도 본격적인 회복이 불투명해졌다. 이라크사태가 어떻게 전개될지, 기름값은 또 얼마나 오를지도 짐작하기 어렵다.

안팎으로 온통 불확실한 것 투성이다. 미래를 예측하기 어려우면 불안해진다. 불안하면 결정을 내릴 수 없다. 한치 앞을 내다보기 어려운 상황에서 거금이 들어가는 투자계획을 선뜻 결정하는 기업은 없다. 장래에 일자리가 어떻게 될지 모르는 사람이 목돈이 들어가는 내구재를 선뜻 사들이지는 않는다. 정부가 여러 가지 투자촉진책과 소비진작책을 내놔도 투자와 소비가 일어나지 않는 이유다. 이런 국면에선 어떤 장밋빛 전망을 내놔도 믿기지 않는다.

대신 모두들 기다린다. 불확실성의 안개가 걷히고 다만 몇발짝 앞이라도 분간할 수 있을 때까지 숨죽이며 기다리는 것이다.

정부는 2분기부터는 경기가 풀릴 것이라고 장담하지만 2분기도 벌써 한달이 지났다. 나머지 두달 동안 경기가 불같이 일어날 것 같지는 않다.

지금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불확실성은 당장 해소하기 어려운 것들이다. 불안해 할 것 없다고 우긴다고 불안심리가 없어지지 않는다. 그렇다면 불확실성을 인정하고 기다리자. 불확실하다는 것만큼은 확실하지 않은가.

김종수 경제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