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님이 연구비 빼돌려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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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교수가 국가 등에서 지원하는 연구비를 일부 유용한 사실이 부패방지위원회(부방위) 조사에서 밝혀져 검찰에 고발조치됐다. 특히 이 교수의 연구비 유용은 학생들이 부방위에 투서를 하면서 드러났다.

부방위 관계자는 26일 "서울대 기계항공공학부 부교수인 C씨(39)가 국가 연구지원금 등을 다른 곳에 사용한 것으로 조사돼 지난 20일 대검에 고발했다"고 밝혔다. 대검은 조만간 이 사건을 서울지검에 보내 수사토록 할 방침이다.

부방위에 따르면 C교수는 기업체에서 기자재를 공짜로 공급받고도 가짜 영수증을 만든 뒤 기자재 구입 명목으로 자금 지원을 요청하는 등 4800여만원을 빼돌렸다는 것이다. 그는 또 학생들을 위해 책정된 연구보조 인건비 5700여만원을 전달하지 않는 등 모두 1억여원을 가로챈 것으로 조사됐다. 이에 부방위는 C교수를 횡령 및 공문서 위조 등 혐의로 고발했다.

부방위는 C교수가 지난해 산업자원부 등 정부 부처와 기업체 등에서 연구과제를 맡으면서 받은 연구비를 빼돌려 부동산 구입 등 개인적인 용도로 사용한 것으로 보고 있다. 부방위는 지난달 29일부터 조사반 3명을 서울대에 파견해 조사를 벌였다. 부방위 관계자는 "다른 실험실도 연구비 전용 논란이 있어 조사 자료를 검찰에 넘겼다"며 "검찰 조사에 따라 사건이 공대 전체로 확산될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C교수는 대학 관계자를 통해 "연구비를 다른 명목으로 지출하기는 했지만 모두 학생들의 연구 지원을 위해 썼으며 인건비도 모두 돌려줬다"고 주장했다.

이에 앞서 C교수의 지도를 받고 있는 석.박사 과정의 학생 10여 명은 "인건비를 달라"며 집단적으로 항의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자 부방위에 투서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사 과정의 한 학생은 "학생들 사이에서 공공연한 비밀이었으나 지도 교수라는 점 때문에 섣불리 말을 꺼내지 못했다"고 말했다.

학생들에 따르면 C교수는 자신의 연구실에서 일하는 학생들에 대한 인건비를 지원받은 뒤 세미나 장소 사용료 등의 명목을 내세워 다시 거둬갔다고 한다. 석.박사 과정의 학생들에게 책정된 인건비는 1인당 40만~60만원 정도다.

한편 서울대는 지난해 국가와 기업 등에서 총 3737개 과제에 2700여억원의 연구비를 받았으며 이 중 공대 230여 개 실험실에 800억~900억원이 지원됐다. 각 실험실에는 적게는 서너 명에서 많게는 20여 명에 이르는 학생들이 각종 프로젝트와 개인 연구를 병행하고 있다.

백일현.김호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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