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칼럼>韓.美 對北전략 명확해야 한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지난달 25일 김영삼(金泳三)대통령은 최전방을 방문한 자리에서 북한정권이 기근으로 인해 붕괴위기에 처했다고 말했다.이말은한.미의 대북(對北)정책이 안고 있는 딜레마를 단적으로 말해준다.미국과 한국은 제각기 위험할 정도로 모순된 대북정책을 추구하고 있다.적지않은 남한사람들은 북한정권을 붕괴할 때까지 쥐어짜야 한다면서도 북한을 연착륙시키자는 제안에는 대부분이 고개를끄덕인다.미국도 아시아지역에서 가장 많은 원조를 북한에 쏟아붓고 있지만 여전히 대북 무역제재는 살아있다.
식량원조나 정전협정,혹은 4자회담의 성사여부를 논하기 전 먼저 한.미의 대북전략이 안고 있는 근본적 문제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우선 북한의 생존을 도울 것인가,아니면 붕괴를 촉진시킬 것인가의 기본방향조차 설정돼 있지 않다.물 론 두 대안중 하나가 선택될 수 있겠지만 두가지 약을 동시에 쓴다는 것은납득이 가지 않는다.워싱턴에서는 의회가 일관성없는 정책에 염증을 느낀 나머지 미 정부의 대북정책을 마비시켰음은 물론 중유공급과 나아가 94년의 제네바 합의까지 위태롭게 하고 있다.
두 대안은 나름대로 장단점을 갖고 있다.북한을 붕괴시키는 쪽으로 몰고가려 한다면 군사대결까지 감수할 용의가 있어야 한다.
물론 미국과 한국이 이기는 싸움이 되겠지만 적지않은 인명피해는물론 서울시도 막대한 재산피해를 보게 될 것이다 .
반대로 북한의 연착륙을 유도하려면 대북지원이 한.미의 이해관계와 일치한다는 인식이 있어야 한다.식량지원도 마찬가지다.어디까지가 굶주린 북한을 돕는 것이고,어느 선을 넘으면 북한을 필요이상으로 이롭게 하는 것이란 수준을 정할 수 있 는가.
공교롭게도 현 상황에서는 북한만이 유독 자신이 원하는 바를 명확히 파악하는 것으로 보인다.그것은 다름아닌 체제유지고,이를위해 국제사회의 원조와 투자,그리고 미국으로부터 안전을 보장받는 것이다.북한상황의 악화가 군사적 모험으로 이 어지기 전에 미국과 한국은 양국의 대북정책을 잘 조화시켜야만 한다.
한.미의 대북전략은 명확해야 한다.이를 위해선 상호신뢰를 형성해 가는 로드맵(목표지점까지 가기 위해 반드시 거쳐가야 하는이정표가 표시된 지도)을 그려야 한다.약간의 결점에도 불구하고북.미 제네바회담에서 도출된 북핵해결구도가 지 금까지 성공적으로 운영되는 것도 로드맵이 있었기 때문이다.빌 클린턴대통령은 이같은 절차를 전담할 고위급 특사를 임명해야 한다.그렇지 않고선 북한이 식량원조와 재벌들의 투자를 받아삼키기만 하면서 미국과 한국이 원하는 바는 외면하는 현 재와 같은 상황이 지속될 것이다. 로드맵의 목적은 북한 의도를 시험하기 위한 것이다.한.미.일의 최우선 목표는 북한의 군사적 위협을 감소시키는 것이다.미사일.생화학무기 생산중지,국제규범 준수,남.북한 핫라인개설,군사적 투명성 보장등과 같은 조치가 미국의 무역제재를 완화하고 남한의 투자확대,북.일 국교정상화와 세계은행의 지원창구 개설과 같은 조치를 유도할 수 있을 것이다.남.북한과 미국,혹은 남.북한간의 군사회담 개최도 바람직하다.농작물 지원도 시장경제형태의 농업개혁을 자극하는 형태로 제공돼 야 한다.
중요한 것은 북한이 무언가를 원한다면 그만한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것이다.그 값은 군사적 긴장을 완화시키고 경제교류를 비롯한 남북화해의 길을 여는 것이다.현재와 같은 상황이 계속되는것은 한국이나 미국,심지어 북한에도 바람직한 것 이 아니다.
로버트 매닝 美진보정책硏 선임위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