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의결정족수도 못 채우는 공룡 여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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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어제 새벽 국회에서 벌어진 추가경정예산안 표결 소동은 집권 한나라당의 국정 운영 능력에 깊은 회의와 불안감을 던져주고 있다. 당은 예결특위 전체회의에서 의결정족수가 1명 부족하자 불참한 특위위원을 급히 다른 사람으로 바꿔치기를 했다. 특위소속 의원을 레고(Lego) 장난감 정도로 아는 처사다. 그렇게 중요한 예산안이라면 당 소속 예결위원들이 어디로 갔기에 정족수를 못 채우는가. 게다가 교체 절차가 끝나기도 전에 정족수가 됐다며 표결을 강행했다. 과반수 여당이 위법과 법안 무효화에 앞장선 것이다. 당은 예결특위 표결 무효 논란을 아예 덮어버리려 의장에게 본회의 직권 상정을 요구하는 편법까지 썼다. 의장은 거부했으며, 결국 본회의는 무산됐다. 한나라당은 호주머니 속의 구슬처럼 국회 의사절차를 마음대로 주무르려 했다가 모든 걸 뒤죽박죽으로 만들어 놓았다. 민생예산이라며 강행한 추경안 4조2677억원은 처리를 못했다.

그동안 당이 보여준 산만한 질서를 보면 이런 소동은 차라리 예정된 것인지도 모른다. 지도부는 촛불시위 때 미국산 쇠고기 반대론자들에게 질질 끌려 다녔다. 당 대표의 ‘대북특사’ 발언 소동도 있었다. 최근 일부 의원은 별반 책임감 없이 경찰청장 사퇴를 주장했다. 원내대표는 느닷없이 남북 정치회담을 제의했는가 하면, 가장 최근엔 뜬금없이 연말 당정 개편론을 주창해 혼란만 만들었다. 연찬회는 자주 하는데 당의 질서는 모래알 같다. 그러니 민생예산이라고 그렇게 선전해 놓고도 의결정족수 하나 채우지 못하는 일이 벌어지는 것이다.

원내대표가 사의를 표했는데 당 지도부는 정기국회 등을 고려해 만류한다고 한다. 당의 사정이야 있겠지만 국민은 이런 리더십으로 172석의 공룡이 앞으로 어떤 소동과 혼란을 빚을지 불안하다. 제1 야당 민주당은 예산안 협상에 시간을 끌면서 한나라당의 예결위 단독 처리를 유도해 놓고는 이를 날치기라고 몰아붙이고 있다. 전형적인 발목잡기 행태다. 민주당은 다수결의 원칙을 존중하고, 한나라당은 과반수 여당답게 국회를 성숙하게 운영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