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산심의부터개혁하자>6.'심의사각지대' 公共.민간기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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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지난달 26일.감사원장 자문기구인 부정방지대책위원회는 「기금부조리 실태및 방지대책」이란 1백여쪽짜리 보고서를 냈다.보고서내용중 한토막.
『98개에 달하는 각종 기금(基金)의 낭비,비효율적인 운영이심각하다.막대한 규모의 여유자금을 기금 관리주체가 임의로 금융기관에 운용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부조리가 비일비재하다.그러나정부의 기금운용은 국회의 예산심의 과정에서 원천 적으로 배제돼있다.』 올해 우리나라 예산(보통 예산이라 하면 일반회계로 간주된다)은 모두 57조9천억원.경제총량 규모의 증가에 따른 것이지만 엄청난 규모다.
반면 예산의 개념에 포함되지 않으면서 정부가 별도로 운용하는공공관리기금은 43조4천억원으로 일반회계와 비교할때 64%에 달한다.게다가 공공관리기금 이외의 기타 민간기금까지 포함하면 기금의 총액은 78조8천억원으로 늘어나 예산규모 를 훌쩍 뛰어넘는다. 그러나 이 기금은 「법」에 의해 국회의 예산 심의대상에서 벗어나있다.정부 입장에선 예산심의 안전지대에 있지만 국회입장에선 심의의 사각지대에 자리잡고 있다.바로 예산회계법 7조2항 「기금은 세입세출 예산에 의하지 아니하고 운용할 수 있다」는 규정때문이다.
실제로 국회 예결위 심의과정에서 기금은 좀처럼 다뤄지지 않는다. 일부 의욕을 가진 의원들이 질의를 한다해도 정부 입장에선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질의와 답변이 겉돌 뿐이다.
지난해 10월31일 국회 예결위 결산회의.
『방위산업 육성기금은 94년중 3백33억원의 연구개발및 원자재 비축 운용계획을 세웠으나 49.3%인 1백64억원만을 운용했을 뿐이다.운용실적이 왜 이렇게 저조한가.』(국민회의 金元吉의원) 『적절한 운용방안을 강구하겠다.』(국방부 李養鎬장관) 지난 93년 11월22일 예결위 8차회의 또한 마찬가지.
『정부관리기금의 92년 운용규모가 27조8천억원이다.기금은 세입세출에 의하지 않고 신축적인 운용이 가능하다.그렇다해도 운용실적을 보면 너무 주먹구구식이고 방만하다.』(무소속 徐勳의원) 『석유관리기금 같은 것이 그때그때 유가 움직임 등 때문에 사실상 기금계획을 짤때 예산과 같이 정확한 예측을 하기 힘들다.한마디로 예상대로 운용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李經植경제부총리) 특히 운용부분에 대해선 질의로나마 정부측 관계자들의 주의를 환기시킬수 있으나 삭제나 삭감은 아예 엄두도 못낸다.때문에 예산심의의 사각지대를 틈타 각종 기금의 비중은 날로 커지고있다.지난해와 비교해 올해 일반회계와 특별회계의 증가 율은 각각 11.7%와 14.7%에 그쳤지만 기금의 경우 증가율이 17.6%에 이른다.90년 이후 지난해까지만도 공공기금 8개,민간기금 5개가 새로 생겨났다.
기금이 국회의 예산심의에서 제외됨에 따라 부조리도 적지않다.
서울시 중구청은 사회복지사업기금과 관련,이웃돕기성금을 거두는과정에서 89년8월부터 93년4월까지 건축허가 민원인에게 최하10만원에서 최고 1천만원씩 모두 7천6백만원을 모금했다가 93년6월 감사원에 적발됐다.
이웃돕기성금은 자발적인 기탁이 원칙인데 건축허가와 관련된 민원인들에게 강제성 모금을 했기 때문이다.
특히 정치권에선 기금이 국회 심의에서 제외되다보니 과거 운용과정에서 금융권 예치를 둘러싼 커미션 등이 정치자금으로 흘러들어갔다는 의혹도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6공 당시 이원조(李源祚)씨의 석유사업기금의 정치자금 유용설등이 그 예다 .이래서 『기금은 운용하는 해당부처의 쌈짓돈』(국민회의 金忠兆의원)이라는지적도 끊이질 않고 있다.
기금은 국가가 특정목적을 위해 특정한 자금을 운용할 필요가 있을 때에 한해 법률로 설치할수 있게 돼있다.(예산회계법) 물론 기금에 대해 예산처럼 국회심의를 거쳐야 한다는 주장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13대 여소야대 국회때 기금관리기본법을 제정하면서 야당측은 기금을 심의할수 있는 규정을 마련,재무위에서 통과시켰다.그러나 법률안 심의과정에서 「국회 심 의」부분은 「보고」로 뒤바뀌었다.
당시 정부와 여당인 민정당의 합작품이었다.결국 공공기금은 예산심의때 운용계획서만 제출하게 됐으며 민간기금은 그나마 보고절차마저 제외됐다.
국회 입법조사분석실 이원희(李元熙)재정연구관은 『기금 설치가남발됨으로써 재정의 정확한 규모를 파악하기 힘들다』며 『이제라도 재정 민주주의를 보장한다는 차원에서 기금에 대한 국회심의가이뤄져야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재경원 담당자들은 『의원들이 질의는 할수 있고 운용계획서도 보고하는만큼 지금도 심의의 여지가 충분하다』고 부정적인 입장이다.
그러나 감사원 부정방지대책위조차 보고서를 통해 기금 비대화와부조리를 우려,『공공기금등을 통합예산 개념에 포함시키는 재정관리가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박승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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