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전 쓰러진 카스트로 … 김정일 ‘병상정치’ 모델 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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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졸중으로 쓰러진 것으로 알려진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은 앞으로 어떻게 북한을 통치할 것인가. 이와 관련해 쿠바의 피델 카스트로 전 국가평의회 의장이 했던 ‘병상정치’가 새삼 관심을 끌고 있다.

피델 카스트로는 2006년 7월 급작스러운 장출혈로 수술을 받은 뒤 병상에 누웠다. 이때 통치권을 동생 라울(77)에게 잠정 이양했다가 올 2월 라울에게 정식으로 권력을 넘기고 은퇴했다. 하지만 지난달 13일 82세 생일을 맞은 그는 올 들어 공산당 기관지인 ‘그란마’에 한 달에 4~6개의 칼럼을 기고하면서 빈번히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최근엔 그의 모습을 찍은 동영상 수도 예전보다 더 자주 공개되고 있다.

허리케인 구스타프와 아이크가 이달 들어 연달아 쿠바를 덮쳤을 때도 쿠바 관영 TV는 “라울 카스트로 국가평의회 의장과 병상의 피델 카스트로가 분 단위로 상황을 점검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라울이 추진하려는 각종 경제 개혁 작업이 지지부진한 것도 피델이 브레이크를 걸고 있기 때문이라는 소문도 흘러나온다. 한 예로 라울이 취임한 이후 활발히 개혁을 추진하자 피델은 “1959년 혁명정신을 잊지 말자”는 칼럼을 기고했다. 이후 연설에서 라울은 경제 개혁 방안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다. 또 피델이 칼럼에서 식량으로 대체 연료를 만드는 것을 비판한 후 쿠바 정부가 사탕수수 추출물로 에탄올을 만드는 계획을 원래 예정보다 축소하겠다는 방침을 밝히기도 했다. 피델의 ‘칼럼 정치’가 사실상 쿠바 국정의 방향타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권력을 이양받은 라울이지만 피델의 뜻을 받든다는 점을 공개적으로 밝혔다. 라울은 “대중 연설 원고를 사전에 피델에게 보여줬더니 완전히 내 견해에 동의한다고 밝혀 너무 기뻤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피델은 해외 인사들과도 계속 만나고 있다.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 중국 공산당 정치국 허궈창(賀國强) 상무위원과 환담을 나눴고, 7월엔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와 5시간 동안 대화하기도 했다.

그가 병상정치로 어느 정도의 권력을 행사하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전문가들 사이에도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워싱턴에 있는 미 대륙대화연구소의 댄 에릭슨 연구원은 “카스트로는 국제적으로 여전히 많은 독자를 지니고 있다”며 “이제 대중 연설은 못 하지만 그의 글은 여전히 강한 호소력이 있다”고 말했다. 줄리아 스웨이그 미 국제관계위원회 위원은 “피델이 개혁을 가로막는 유일한 요인은 아니지만 개혁 속도를 늦추는 요인 중의 하나”라고 말했다. 워싱턴 소재 국립전쟁대학의 프랭크 모라 교수는 “피델이 모든 정책을 결정하진 않지만 주요 정책에 대한 거부권은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최지영 기자

카스트로, 집권에서 최근 동향까지

-1959년 1월 : 혁명군 사령관으로 수도 아바나 입성

-1965년 10월 : 공산당 제1서기에 임명

-1976년 12월 : 국가평의회 의장에 오름

-1997년 10월 : 제5차 공산당 대회서 동생 라울 카스트로를 후계자로 공식 지명

-2006년 7월 27일 : 장출혈로 긴급 수술

7월 31일 : 라울 에게 권력 잠정 이양

-2007년 12월 17일 : TV 통한 편지에서 일선 후퇴 첫 시사

-2008년 2월 18일 : 국가평의회 의장 사임 발표

7월 10일 : 노벨상 수상자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초청 5시간 환담

9월 2~3일 : 허리케인 구스타프·아이크 피해 복구 촉구 글 ‘그란마’에 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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