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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탕·삼탕 … 정부 정책도 재활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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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30대 선도 프로젝트를 국책 사업으로 선정해 향후 5년간 50조원을 투자하여…’.

정부가 10일 발표한 ‘광역경제권 선도 프로젝트 추진 방안’의 내용이다. 언뜻 보면 어마어마한 사업들을 새로 벌이는 것처럼 들린다. 하지만 사실은 좀 다르다. 30대 선도 프로젝트는 ‘행정중심 복합도시’ ‘호남고속철도’ 등 그동안 익히 들어온 것이다. 바로 며칠 전인 4일 정부가 구상을 내놓고, 5일 공청회를 한 ‘새만금 개발’도 30대 선도 프로젝트에 포함돼 다시 이름을 올렸다.

지난주 정부가 ‘생활공감 정책’을 대통령에게 보고할 때도 그랬다. 67개 정책 과제 중 50여 개가 이미 공표했던 정책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예를 들어 중소기업이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바꾸면 1인당 30만원씩 법인세를 깎아준다는 것이 있다. 이건 기획재정부가 6월 국회에 낸 세법개정안에 들어가 있는 내용이다. 전통 재래시장의 주차장을 늘린다는 것은 두 달 전 경제안정 종합대책으로 내놨던 내용의 재탕이다.

결국 정부가 이미 하기로 했던 정책을 이리저리 짜깁기한 뒤 새 이름을 붙여 국민 앞에 내놓곤 한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오죽하면 대통령도 생활공감 정책을 보고받는 자리에서 “책상에 앉아 기존에 추진한 정책의 포장만 바꿔 재탕·삼탕하는 자세는 안 된다”고 했을까. <본지 9월 6일자 6면>

정부는 지난달 11일 공기업 선진화 1차 계획을 놓고도 비슷한 질타를 받았다. 당시 정부는 27개 기관을 민영화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여기엔 이미 민영화하기로 한 산업은행과 자회사 두 곳, 기업은행과 자회사 세 곳이 다시 포함됐다. 게다가 대우조선해양·쌍용건설처럼 애초 공적 자금을 투입할 때부터 민간에 매각하기로 수순이 정해져 있는 기업 14개까지 끼워 넣었다. 당연히 “민영화 기업 숫자를 부풀려 발표했다”는 지적이 뒤따랐다.

자꾸 이러다가 정부가 국민으로부터 “정책 선전은 요란한데 새것은 없는 빈 수레”라든지, “그 밥에 그 나물 식으로 써먹은 것 또 써먹는다”는 소리를 듣게 되지는 않을까. 한성대 이종수(행정학) 교수는 “정부가 지지도를 이른 시일 안에 회복하려고 경제 살리기 대책을 쏟아내다 보니 재탕·삼탕이 많아졌다”며 “지지도를 올리려다 오히려 신뢰를 잃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권혁주 경제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