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한전 적자는 메워주되 구조조정하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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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올해 한국전력의 적자는 추가경정 예산으로 보전해주는 게 타당하다. 전기료도 올리는 게 맞다. 최근의 한전 적자는 고유가가 근본적인 이유다. 정부는 생산비용이 올랐지만 물가안정 때문에 전기료 인상을 억제해온 게 사실이다. 당초 약속대로 한전 적자는 예산으로 메워주는 게 올바른 수순이다. 전기료 인상도 마찬가지다. 지난 20여 년간 전기료가 제자리걸음을 하면서 시장 왜곡 현상마저 생겨났다. 멀쩡한 난방시설을 떼내고 전기보일러를 들이는 가정도 늘어났다. 고급 에너지인 전기를, 상대적으로 값싸다는 이유로 펑펑 낭비하는 것은 고유가 시대에 어울리지 않는다.

한전 적자를 놓고 정치권이 입씨름을 벌이는 것은 한심한 모습이다. 한나라당은 2년 전 추경 예산을 엄격히 제한하는 국가재정법을 주도한 당사자다. 전쟁·자연재해·대량실업 같은 경우를 제외하고는 추경 편성을 못하게 했다. 지금 이 법이 한나라당의 발목을 잡고 있는 것이다. 민주당의 논리도 꼬이기는 마찬가지다. 한전 적자를 그냥 놓아두면 빚으로 메울 수밖에 없다. 민주당의 전신인 열린우리당은 지난해 국가 채무 논란 때 “한전의 빚은 한전이 갚으면 될 뿐, 국가 채무가 아니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그렇다면 왜 미국 재무부는 공적자금을 동원해 준(準)공기업인 패니메이와 프레디맥의 부채까지 떠안는 것인가. 공기업인 한전이 파산할 경우 어차피 정부, 결국은 국민이 떠안게 된다.

그러나 공기업이라도 앉아서 장사할 생각은 버려야 한다. 적자만 나면 예산을 축내는 관행은 사라져야 한다. 한전의 적자도 단지 고유가 때문만은 아니다. 한 해 수십억원의 접대비를 쓰고 직원들이 내야 할 수백억원의 개인연금까지 대신 내준 곳이 한전이다. 정부는 해마다 20조원 이상의 예산을 공기업에 지원하고 있다. 이런 방만 경영을 뜯어고치지 않는 한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다. 한전도 적자를 보전받는 대신 과감한 경영혁신과 구조조정에 나서야 한다. 그래야 국민 앞에 내미는 손이 부끄럽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