록밴드 '산울림' 강원도서 천막 공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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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3면

지난달 30일 오전3시 강원도원주시문막읍 섬강변의 한 농가.
비좁은 앞마당에 천막을 치고 마련한 간이 객석에는 60여명의 관객이 옹기종기 자리잡고 이날의 주인공이 나타나기를 기다렸다.
백열등과 외등이 전부인 무대조명이 들어오자 낯익■ 모습의 세 중년 남자가 등장,각각 기타와 베이스.드럼 스틱을 잡았다.
『첫곡은 뭘로 하지.』『그래,형.「회상」부터 합시다.』 이윽고 찬 새벽공기를 가르고 울려퍼지는 아늑한 목소리.『길을 걸었지/누군가 옆에 있다고….』두어 소절이 채 끝나기도 전에 관객들의 합창이 이어졌다.
추억의 록밴드 「산울림」 삼형제가 13년만에 갖는 단독공연은이처럼 조촐하게 시작됐다.약간은 머리가 벗어지고 적당히 배에 살이 붙은 모습이었지만 삼형제는 나이를 잊고 20년 전의 데뷔시절로 돌아간듯 했다.캐나다에서 급거 귀국한 둘 째 김창훈은 악보를 곁눈질 해가며 리듬을 맞췄다.대기업 중견간부인 막내 김창익은 월차휴가를 내고 이날 공연에 참석했으며 손가락에 생긴 물집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혼신의 힘을 다해 신나게 드럼을 두들겼다. 통기타에서 전기기타로 바꿔 멘 맏형 김창완이 강렬한 디스토션(징징거리는 기타소리를 내는 특수효과)을 넣어 『한마디』『길엔 사람도 많네』『지금은 잘 생각나질 않네』등 록 넘버들을연주하면서 공연의 열기는 무르익어갔다.김창훈이 예전의 샤우트 창법과 조금도 달라짐이 없는 목소리로 『소나기』를 부르자 흥을이기지 못한 관객은 자리에서 일어나 열광했다.
처음에 약간 긴장된 모습을 보였던 삼형제는 시간이 갈수록 여유를 되찾았다.김창완은 상기된 목소리로 『요즘들어 부쩍 인생이촌각이란 것을 느끼게 된다』며 『섬광같은 인생이 이 순간에 모여 있는데 오늘 이 자리의 사진은 그저 정지 사 진이었으면 한다』고 말하며 공연을 이어나갔다.2시간30분간 모두 23곡을 연주하는 동안 어둠에 잠겼던 섬강의 모습이 완연히 드러났고 누군가 『「아니 벌써」 날이 샜잖아』라고 말하는 것과 동시에 공연은 끝이 났다.
이날 공연의 관객은 방송 관계자.환경운동가등 평소 김창완과 친분이 두터운 사람들과 지난해 11월 열성팬들이 결성한 컴퓨터통신 하이텔의 소모임 「개구장이」 회원들로 제한됐다.이들은 17장에 이르는 「산울림」의 음반목록은 물론 정작 멤버들도 기억못하는 노래들을 줄줄 외는 「산울림 광(狂)」들이다.
이 공연에 앞서 지난달 29일 저녁 서울올림픽공원에서 열린 「락 메이드 인 코리아」공연은 최근 몇년새 젊은층을 중심으로 고조되고 있는 「산울림」 열기를 다시금 확인시켜 준 무대였다.
「락 메이드…」 공연에서 20대 초반이 대부분인 젊은 관객들은함께 출연한 「넥스트」나 「시나위」 등 정상급 그룹들보다 「산울림」의 연주에 더욱 열광했다.
현란한 기교와는 거리가 멀고 김창완의 노래솜씨도 썩 뛰어난 것이 아니지만 「산울림」의 음악은 20년이란 세월을 뛰어넘어 다시금 인기를 얻고 있는 것이다.이는 「산울림」의 노래에 진솔한 감정이 들어있어 정서적인 공감형성이 쉬운 독특 한 매력이 있는데다 화려함보다 단순미를 추구하는 90년대 록음악의 조류에「산울림」의 음악이 잘 부합되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산울림」 데뷔 20주년이 되는 내년에는 삼형제의 본격적인 공연을 볼 수 있게 될 전망이다.김창완은 『내년에 대형공연과 소극장에서의 장기공연을 계획중』이라며 『지금 시중에서 거의 구하기 힘든 옛 음반들을 CD로 재발매하고 미공개 트랙 몇몇 곡들도 함께 발표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원주=예영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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