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 헌재, 사막 총리 직위 박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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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태국 헌법재판소가 9일 만장일치로 사막 순타라웻(사진) 총리의 자격을 박탈하는 판결을 내렸다.

헌재는 결정문을 통해 “사막 총리가 취임 후 TV 요리쇼에 출연한 것은 헌법 267조 위반이며 이는 총리 사퇴 이유로 충분하다”고 밝혔다. 9명의 헌법재판관 중 6명은 그의 요리쇼 진행을 ‘방송국의 피고용자 신분’으로, 나머지 3명은 ‘동업자 관계’로 규정했다.

태국 헌법은 총리나 각료 등 고위 공직자가 이윤 추구를 목적으로 하는 법인에 취직하거나 급료를 받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총리가 유죄 판결을 받을 경우 당사자와 그가 임명한 내각이 동반 사퇴해야 한다. 그러나 헌재는 이날 내각에 대해선 의회가 새 총리를 선출할 때까지 30일 동안 업무를 계속 수행하도록 했다. 이에 따라 솜차이 옹사왓 제1 부총리가 과도정부의 총리직을 맡게 됐다.

헌재의 판결에 대해 연정 중심당인 국민의 힘(PPP)은 “12일 의회를 소집해 사막을 차기 총리로 재선출하겠다”고 밝혔다. 5개 연정 정당 등도 사막 총리의 재선임에 긍정적이다. 이에 대해 총리 사퇴를 요구하며 15일째 정부 청사 점거 농성을 벌이고 있는 시민민주연대(PAD) 측은 ‘위법 총리’를 인정할 수 없다며 강력한 반대의사를 밝혀 태국 정정은 더욱 혼미해질 전망이다.

태국 수도 방콕의 정부 청사를 점거하고 15일째 농성 중인 반정부 시위대가 9일 헌법재판소가 사막 순타라웻 총리의 자격을 박탈하는 판결을 내렸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환호성을 지르고 있다. [방콕 AP=연합뉴스]

쿠텝 사이크라장 PPP 대변인은 “유죄 결정에도 불구하고 당은 사막이 총리직에 가장 적합한 인물로 보고 있다”며 “그를 다시 총리로 선출 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재선출 일정에 대해서는 “아마도 12일께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반정부시위를 주도하고 있는 PAD 측은 “불법을 저지른 사막을 총리로 재선출하는 것은 민주주의를 포기하는 것”이라며 “모든 힘을 동원해 사막 총리의 재선출을 막겠다”고 밝혔다.

정부 청사를 점거하고 있는 시위대는 헌재의 총리 사퇴 명령 소식에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시위대 지도자 프라판 쿤미는 “우리는 이 정부가 완전히 쫓겨날 때까지 여기 머물 것”이라며 “사막이 쉽게 다시 올까 걱정”이라고 말했다.

요리사 경력이 있는 사막 총리는 2000년부터 지상파 채널에서 요리쇼를 진행해 왔다. 올 2월 6일 총리에 임명된 후에도 2개월 넘게 TV방송국 채널5에서 ‘맛보기와 투덜대기’, 채널3에서 ‘오전 6시의 아침상’이라는 요리쇼에 출연했다.

야당과 선거관리위원회가 현행법 위반 가능성을 제기하자 그제야 방송 출연을 중단했다.

사막 총리는 8일 변론에서 “방송에 출연하면서 쇼를 위한 요리 재료 구입과 지방 여행비만 지급받았을 뿐 급료는 받지 않았다”며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는 변호인 해석에 따랐던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쇼 제작을 담당한 TV방송국의 삭차이 쾌와니사쿨 국장은 “쇼에 출연하는 동안 총리에게 회당 560달러를 지급했다”고 주장했다.

방콕=최형규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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