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궁연의 인카 문명] 당신의 ‘내비 스트레스지수’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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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1면

요즘 내비게이션 달지 않은 차가 없죠. 그야말로 자동차 문화의 총아입니다. 그런데 ‘내비게이션 스트레스’라고 들어보셨습니까?

운전을 좀 더 편하게 하자고 만든 이 문명의 이기는 오히려 운전자들에게 ‘아는 길도 물어가라’는 속담을 되새기게 하면서 다양한 스트레스를 안겨주고 있습니다. 또 ‘컨버전스’라는 미명 아래 결합된 DMB 기능에 본연의 자리를 빼앗기고, 교통 위험 구간 안내라는 보조 역할로 전락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내비게이션 스트레스지수’를 체크해 볼까요? 다음은 맞닥뜨리는 상황과 운전자의 반응입니다.

1) “아! 황당해! 거기 전화번호가 몇 번이었지?”

골목이 수없이 많은 주택가에서 집을 채 찾지도 못했을 때 ‘목적지 주변입니다. 안내를 종료합니다’라며 야속하게 길안내를 끝낼 때, 앞뒤로 밀려오는 차를 피해 가며, 결국은 전화로 목적지를 찾아가야 할 때입니다.

2) “싫어요! 일단 직진할 겁니다.”

교통체증으로 꽉 막혀 있는 길로 진입하라고 할 때, 경로가 자동 재검색되기를 기대하며 (기다리며) 우선 뚫리는 길로 직진할 때.

3) “다음이라는 게 이번이야, 아니면 진짜로 다음이야?”

느낌상으로는 이번에 우회전해야 하는 것 같으나, 화면 지도 위에 내 차는 아직은 꺾이는 부분에 도달하지 않은 것으로 보이며, “다음에 우회전입니다”라고 나올 때.

4) “아! 또 속았네.”

유료터널이 무료로 바뀌는 오후 9시 이후에도 통과하기 전 “요금은 2000원입니다” 하는 소리가 들리자 무심코 지갑에 손을 대는 자신을 발견했을 때(내비게이션의 오전·오후 화면은 자동 전환되지만 요금 안내는24시간 나옵니다).

5) “경로 취소 좀 눌러줘!”

모르는 길을 가다가, 아는 길을 만났을 때.

6) “아까 분명히 우회전 화살표를 봤는데?”

보조화면에서 보여주는, 몇 ㎞ 이후의 예고를 현재 안내로 착각하고 길을 잘못 들었을 때.

7) “허, 저기 있긴 있네 그려!”

내비게이션 안내를 포기하고, 차에서 내려 현지인들에게 길을 묻다가 지도에 자동으로 표현되는 목적지 부근 주유소나 레스토랑을 뒤늦게 발견했을 때.

내비게이션을 쓰는 운전자라면 아마 일주일에 몇 차례씩 위와 같은 상황을 겪을 겁니다. 왜 이런 일이 자꾸 벌어질까요? 1992년 미국 대선 당시 빌 클린턴 민주당 후보의 슬로건을 패러디해서 대답해 봅니다. “바보야! 문제는 길 찾기야!”

최근에는 3D 내비게이션까지 등장하고 있습니다. 신기하기도 하고 성능도 테스트할 겸 지인의 것을 빌려 지방을 다녀왔습니다. 결과는 영 실망입니다. 화면을 가득 메운 건물들은 입체라기보다는 지저분하기만 했고, 실사와 비슷하다고 힘주어 광고하는 건물의 상세 묘사는 길찾기와는 전혀 상관없는 기능입니다. 오히려 보기만 불편하고, 사용자를 헷갈리게 합니다.

최근 나오는 내비게이션에 현란한 보조기능들이 경쟁적으로 더해지고 있지만 그럴수록 소비자의 불만도 커지고 있습니다. 이유는 본연의 임무에 충실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단순한 것이 더 좋은 법입니다. 이제 내비게이션은 ‘길을 잘 찾아주는 장치’라는 본래의 이름을 되찾아야 하지 않을까요?

남궁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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