얇아진 지갑 … 이젠 잘 열지도 않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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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가계가 지갑을 닫고 있다. 경기 침체의 그늘이 깊게 드리워지면서다. 올 2분기 민간소비는 1분기에 비해 줄었다. 소비가 뒷걸음질친 것은 4년 만이다. 물가·금리 급등으로 실질소득이 줄어든 가계가 씀씀이를 줄였기 때문이다.

5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2분기 민간소비는 1분기보다 0.2% 감소했다. 2004년 2분기(-0.1%) 이후 처음이다. 통신과 의료·보건에 쓴 돈은 늘었지만 TV와 같은 가정용 전기기기는 물론 의류·신발 등의 소비가 부진했다. 당장 필요한 물건이나 서비스가 아니라면 굳이 지갑을 열지 않는 것이다.

한은의 정영택 국민소득 팀장은 “물가와 금리가 많이 오르고 고용 사정이 좋지 않은 데다 가계부채가 많아 소비할 여력이 많지 않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6월 말 현재 가계대출은 3월 말보다 10.3%나 늘었다. 게다가 금리까지 올라 이자 부담이 커지자 허투루 돈을 쓸 여유가 없는 것이다.

실질 국내총생산(GDP)도 부진했다. GDP 증가율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4.8% 성장했지만 1분기(5.8%)엔 크게 못 미쳤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국민소득의 49.3%를 차지하는 민간소비 부진의 영향이 컸다.

민간소비와 함께 건설투자가 부진한 것도 성장률 부진에 한몫했다. 건설투자는 전국에 미분양 아파트 물량이 지속적으로 늘면서 1분기(-1.4%)에 이어 2분기에도 1% 감소했다. 반면 설비투자는 기계류 투자가 늘면서 전기 대비 0.9% 증가했다.

민간소비와 GDP가 부진했지만 실질 국민소득(GNI)은 1분기보다 1.2% 증가했다. 한은 국민소득팀 신창식 차장은 “유가 등 수입물가가 급등하면서 실질 국민소득은 마이너스를 기록할 것으로 예상했다”며 “그러나 수출 기업들이 이를 반영해 수출단가를 제때 높이면서 국민소득도 높아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국민소득의 증가가 곧바로 국민 개개인의 소득 증가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국민소득의 증가는 기업의 수출이 늘어난 덕분이다. 돈을 많이 번 기업들이 수익을 종업원들에게 배분하지 않는 이상 국민소득 증가가 국민 개개인의 소득 증가로 연결되지는 않는 것이다. 신 차장은 “경제지표와 체감 경기가 차이 나는 것도 이 같은 이유”라고 말했다.

국민소득이 1.2% 늘었다고 하지만 2분기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4.8%에 달했다. 실질소득은 되레 줄어든 셈이다.

삼성경제연구소 권순우 실장은 “유가가 하락했지만 환율이 상승세를 타고 있기 때문에 고물가에 따른 민간소비와 실질소득의 감소가 당분간 이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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