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銃筒조작' 부른 문화재행정 난맥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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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지난 18일 공신력을 생명으로 하는 해군과 국가 문화재전문기관에 의한 국보 제274호 「귀함별황자총통」조작사건은 국민에게큰 충격을 주었다.현재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중이지만 문화재행정의 난맥상과 골동상들의 가짜만들기 실태를 짚어본다.
[편집자註] 국보 조작사건이 드러나면서 허술한 국보지정 체계와 무사안일한 문화재 행정에 대한 비판이 확산되고 있다.
우선 문화재 지정체계의 허술함이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국보나 보물은 문화재위원회 해당 분과회의 심의를 통해 지정된다.문화재 지정신청이 들어오면 문화재전문위원이 학술조사를 실시,보고서를 제출하고 문화재위원회의 해당분과는 이를 바탕 으로 심의해결정을 내리게 된다.형식적이기 쉬운 이 절차가 그나마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점이 가장 큰 문제로 지적된다.
한달에 한번 열리는 문화재위원회 회의는 국보의 경우에도 대체로 1~2차례 회의로 지정여부를 최종 결정한다.그러나 7~8명의 문화재위원이 한번 회의에서 통상 5~6건의 안건을 일괄 처리하기 때문에 문화재 지정은 전문위원의 보고서를 확인하는 수준의 요식행위가 되기 쉽다.
이번 경우처럼 7명의 위원중 청동기나 총포류 전문가가 한명도없는 경우는 더욱 그렇다.당시 문화재위원이던 문명대 교수(동국대)는 『문화재위원회는 관례적으로 유물의 진위여부보다 가치를 판단하는 기능을 맡고 있다』고까지 말하고 있다.
그러므로 진위판정에는 전문위원의 학술조사보고서가 결정적 역할을 하게 되는데 당시 회의에선 가장 기본적인 이 자료조차 제출되지 않았다.총통 인양 사흘만인 92년 8월21일 열린 문화재위원회 2분과 회의에는 이강칠 당시 문화재전문위원 (전 육사박물관장)이 작성한 메모수준의 간단한 보고서가 제출됐을 뿐이다.
학술조사보고서가 국보지정 4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작성된 일이 없다는 점은 문화재관리국의 행정이 얼마나 허술한가를 나타내주는단적인 사례다.
당국의 안이한 행정자세는 더 문제다.사건 발생후 『해군 공식기구인 「이충무공해저유물조사단」이 인양했고,임진란사 연구전문가인 조성도 해사박물관장의 평가가 있어 의심하지 않았다』는 등 남의 탓으로 돌리는 입장을 보이더니 조작인양된 총 통의 가짜 여부를 가려야 하는 문제에서도『수배중인 골동품상 신휴철씨가 검거돼 경위를 자백한 다음에야 조사를 시작할 것』(18일),『申씨의 양심선언이 있어야 총통의 진위확인이 가능하다』(19일)는등 남의 일 보듯하는 한심한 발언을 해왔다.허술한 문화재 행정이 어디에서 연유하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조현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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